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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기 May 18. 2024

3초의 용기로 얻어낸 값진 경험

-겁쟁이에서 MC용기로-

우리 커플은 축제나 행사들을 의식적으로 찾아다닌다. 다른 mc분들의 진행을 보고 공부하라는 여자친구의 배려 덕분이다. 나의 첫 번째 결혼식 사회가 있고 바로 다음 날인 9월 3일, 우리는 일산호수공원으로 향했다. '독서대전 고양'이라는 행사를 가기 위해서였다. 그날은 특별히 코미디언 김영철 님의 강연도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MC공부뿐만 아니라, 평소 강연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행사장에 도착하자 플리마켓과 책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일산 호수공원을 크게 돌면서 구경을 하고 강연시간에 맞춰 메인 무대로 갔다. 예정된 시작시간보다 여유 있게 가서 인지, 앞자리에도 자리가 있었다. 우리 커플은 자리에 앉아 강연을 기다렸다. 혹여나 MC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었는데  그날의 MC인 MC닥터님이 무대에 올라서 안내말씀을 전하고 오프닝과 강연자인 김영철 님을 소개했다.


프로 MC의 오프닝을 들으니 고작 결혼식사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뿌듯해하던 내가 우스울 정도로 프로의 발성과 멘트는 차원이 달랐다. 이 날 MC의 역할은 오프닝과 강연자 소개정도였기에 MC가 스피치 하는 시간은 짧았다. 그렇기에 더 집중해서 들었다.


코미디언이자, 스타작가 김영철 님입니다!


MC의 소개와 함께 김영철 님이 올라왔다. 나는 TV 채널을 돌리다가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이 하면 종종 보곤 하는데, 솔직히 김영철 님이 재밌는 캐릭터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엄청난 텐션으로 무대를 휘어잡고, 자판기에서 뽑아내는듯한 개인기와 성대모사로 관객들과 소통을 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날의 강연은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주제였다. 흔하다면 흔한 주제였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스타연예인이 어떻게 지금 자리까지 올 수 있었나 들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흥미로웠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김영철 님은 관객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지만 역시나 한국인들은 나서기를 싫어한다. 2명의 꼬맹이들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사실 나는  손을 들고 싶었는데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강연이 슬슬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을 때쯤, 김영철 님이 질문을 받는다고 하셨다. 나는 질문이 아닌 나의 꿈을 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손을 들고 싶었다.

 

"김영철 아저씨의 다음 꿈은 뭐예요?" 관객석에서 어떤 아이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김영철 님은 답변을 하고 있었고 여자친구가 옆에서 말을 걸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영철 님의 답변이 끝나고, "혹시 또 계신가요?"라고 물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약 3초가 흘렀다.


손을 들었다.


"어 여기 예쁜 셔츠 입은 친구"

김영철 님이 마이크를 건넸다.

"혹시 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도 되겠습니까?"

"어 그럼~"

"저는 저기 계신 MC분처럼, 무대에 서는 MC가 되고 싶어서 어제 처음으로 결혼식 사회를 했는데요"

"어 어제 했어? 너무너무 보여주고 싶다. 잠깐 나와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영철 님께서 내 손을 잡고 무대에 올랐고,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본인 소개해주세요"

"저는 MC가 꿈인, 29살 OOO입니다. 반갑습니다!"

다시 한번 수많은 박수가 나왔다. 이때의 박수소리는 결혼식 사회를 할 때 받은 박수와는 달랐다.

온전히 나를 위한 응원의 박수, 격려의 박수소리였다.


"결혼식 사회를 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너무너무 보여주고 싶어서 일단 무대에 올렸어요. 계속해서 말해주세요"

"네 저는 과거에 엄청 내성적이어서 이렇게 무대에 올라서 이야기하는 건 말도 안 될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우연한 계기로 독서모임을 운영하면서 진행에 대한 꿈이 생기고 MC가 꿈이 되었는데 지금 너무 떨리네요. 박수 한 번만 보내주세요"


어쩌면 건방지게 박수 유도를 했음에도 다들 흔쾌하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손을 든 것은 아직 제가 MC의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먼 훗날 제가 포기하고 싶을 때, 제가 뱉어놓은 말이 있기 때문에 한번 더 초심을 찾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도 박수가 터져 나오고 김영철 님이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어제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사람은 자신이 뱉어낸 말대로 살아간다. 살다 보니 어쩌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라는 구절을 읽었거든요. 지금 너무너무 잘 뱉어냈어요"

이어서 김영철 님의 스피치 연습 방법과 무대에 올라서 시선처리 하는 팁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할 수 있는 시간까지 주셨다.


"언젠가 우리 OO 이를 방송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우리 OO 이에게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많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7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대에 올려준 김영철 님에게 정말 감사했다. 잠시 후 강연이 완전히 끝나고 MC분이 클로징 멘트를 했다. 나는 여자친구와 천천히 일어나서 MC분께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MC분께서 웃으며 다가오셨다.


"대박이에요. MC가 꿈이에요? 아니, 너무 멋있는 게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꿈을 이야기하고, 무대에서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게 너무 멋있었고, 아 제가 원래 클로징 멘트를 부탁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인회가 생겼다고 해서 그러지 못했네요. 연락처라도 교환하고 사진 한 장 찍을까요?"

결과적으로 클로징 멘트를 못하긴 했지만 말씀만이라도 너무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번호를 교환하고 사진도 찍었다.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떠나려던 찰나, 이번에는 어떤 남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분이 천천히 걸어왔다.


"아까 무대에서 인사하신 분이죠? 아까 그 모습을 보고, 너무 용기가 대단하셔서 인사드리려고 왔어요. 혹시 인스타 아이디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내가 인스타를 안 하다 보니 번호를 알려주었는데 저녁때쯤 장문의 응원 카톡이 와있었다.


(이후에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지금은 나의 친구이자, 우리 독서모임의 모임원이다.)


신기했다. 3초의 용기를 냈더니 나를 응원하는 두 명의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타인의 눈치를 보다 보니, 저기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나대는 것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니 그 두려움을 무시하고 행동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3초라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 짧은 시간이 삶에서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을 만들어주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저 두명의 인연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나에게 MC로서 사회자로서 또 다른 기회를 주는 사람들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저 처럼 무언가 해보고 싶은게 있지만,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순간의 용기를 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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