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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에서 당한 인종차별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by 용기

우리는 결혼식 식순 중 흔히 있는 혼인서약 대신, 서로에게 직접 쓴 편지를 읽었다. 조금은 오글거릴 수도 있는 방식이었지만, 그 어떤 방식보다도 서로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평생 옆에서 지켜줄 것을 약속합니다.” 나의 편지에서 마지막 구절이자, 그 어떤 약속보다 꼭 지키고 싶은 말이었다.


결혼식 후 한 달이 지나, 우리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이탈리아. 나에게는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꼼꼼한 아내 덕분에 모든 것이 차근차근 정리되었다. 환전, 카드 준비, 캐리어 정리, 소매치기 방지용품까지.. 아내 덕분에 나는 단지 가볍게 짐을 끌고 따라나서기만 하면 됐다.


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고, 아내와 함께여서 더 특별했다. 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한 건 아름다움만은 아니었다.


콜로세움을 관광하던 날, 아내와 나는 잠시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러 자리를 옮기던 중, 한 흑인 남성이 우리를 바라보며 “니하오, 차이나”라고 말했다. 익숙한 장면이었다. 동양인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뱉는 말.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무시하고 지나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욱는 감정으로 그 사람을 향해 몇 걸음 다가갔다. 하지만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이 여행은 나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함께 여행 중인 사람들, 가이드님, 무엇보다도 내 옆에 있는 아내까지 나의 감정 나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아내와 함께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불쾌한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무력하게 피한 것 같았고, 아무런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그 자리를 피한 것 또한 하나의 대응이었다. 어쩌면 가장 현명하고 나와 아내를 지킬 수 있는 대응, 욱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제는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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