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만나는 여행
토디에 도착했을 때 도시는 이미 오후를 삼키고 있었다. 햇빛은 기울고 있었고 돌담과 돌길은 그 빛을 마지막처럼 오래 붙잡고 있었다. 나는 무심히 벗어놓은 그림자처럼 가만히 멈춰 섰다. 오래된 골목을 지나면서 낯설지 않은 어떤 감정이 서서히 가슴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돌로 지어진 벽은 오래된 기도를 품은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았고 골목 저편으로 흘러가는 햇빛은 한 발짝씩 천천히 물러나고 있었다.
그는 내 옆에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그의 숨소리는 내 어깨 위에 있었지만 마음은 어디에도 닿지 않았다. 그와 함께 걷는 풍경 속에서도 나는 계속 안으로만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있었지만 같은 장소에 있지는 않았다. 말을 걸면 대답했고 길을 물으면 같이 지도를 보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여정 위에 있었다.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한가요?" 그가 물었고 나는 그냥 웃었다. 웃음은 말의 자리를 대신했고 그 자리는 바람에게 내어주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의 질문은 나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언덕길 끝에 있는 광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용히 벤치에 앉았다. 벤치 등받이엔 오래 앉아 있던 사람들의 체온이 남아 있었고 그 자리에 등을 기대자마자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그는 옆에 앉았다가 곧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고 돌아오는 길엔 그를 보지 않았다. 남겨진 공간이 오히려 가득 차올랐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도 가장 편안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돌 바닥에 스며드는 빛을 바라보았다. 빛은 바닥에 닿기 전 잠깐 머뭇거렸고 그 망설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곳은 기도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기도인 듯한 도시였다. 창문 틈새로 새어나오는 빛도 돌담 사이에 움켜쥔 바람도 골목을 맴도는 발소리도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 건물의 그림자마저도 묵상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고 나는 그 안에서 내가 말없이 살아왔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가 돌아왔다. 손에는 엽서를 한 장 들고 있었고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말없이 내 옆에 앉았다. 그의 어깨가 내 팔에 스쳤을 때 순간적으로 심장이 조용히 뛰기 시작했다. 그 온기를 알아보는 데는 망설임이 없었고 오래된 기억처럼 따뜻하게 번져갔다. 나는 그 순간을 외면하지 못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손등이 살짝 내 손에 닿았고 나는 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조용히 놓아두었다. 말이 없었지만 그건 명확한 침묵이었다. 그의 시선이 내 옆모습에 오래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고, 그 시선은 나를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여기 너무 조용하네요. 뭔가 좀 불안해요."
나는 그 말을 들었지만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조용한 건 불안한 게 아니에요. 그냥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죠."
그가 진짜 듣고 싶었던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저랑 있어도 계속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아서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말해주었다.
"아무 생각도 안 해요. 그냥 살아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걸 조금씩 배우는 중이에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엽서를 괜히 한 번 접었다 폈다.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사실은 말이 어지럽히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말로 덮으려는 순간들이 오히려 관계를 더 조용히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고 나는 지쳐서 설명을 멈췄다. 그날의 끝에서 나는 더 이상 그에게 어떤 감정도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내 마음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있었고 그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 무지 속에서 그는 참 따뜻했고 그 무지 때문에 나는 참 외로웠다.
토디에서 돌아오는 길 그는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한참을 말이 없더니 겨우 꺼낸 말이 이거였다.
"무언가 저한테 말 안 하시는 거 있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향한 물음 같았지만 사실은 그 자신에게 묻고 있는 말이었다. 나는 그에게 등을 돌린 채 잠이 든 척했다. 눈꺼풀 아래로 빛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 빛이 사라진 후에도 눈은 감긴 채로 오래 있었다. 그는 나를 깨우지 않았다. 그건 배려가 아니라 그 역시 대화가 더 이상 의미 없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토디의 그 길 그 골목 그 빛과 그 그림자들은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내가 말하지 않은 마음들과 그가 듣지 못한 시간들이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가 떠나고 난 뒤에도 나는 그 자리에 혼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 진짜 나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