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적 감수성

by 마르치아


요즘 ‘연극적 감수성’이라는 말이 자주 화두로 떠오릅니다. 허구나 드라마, 책 속 이야기에는 깊은 감정이입을 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정작 내 곁의 누군가가 고통에 처해 있을 때는 무심하게 지나쳐버리는 상태를 말하지요. 그것은 슬픔을 느끼는 감정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진짜 삶으로 옮기지 못하는, 혹은 옮기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어느 부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날, 그녀는 한 편의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연극 속 주인공의 고통스러운 삶에 그녀는 내내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을 본 관객들은 그녀를 동정심 깊은 여인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날 때까지 그녀를 마차에 태우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던 마부는 매서운 바람 속에서 벌벌 떨며 서 있어야 했습니다. 연극 속 인물의 아픔에는 마음을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직접 고용한 마부의 추위에는 무심했던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정말 동정심 깊은 사람이었다면, 먼 이야기의 고통보다 눈앞의 추위에 떨고 있는 이의 현실을 먼저 살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러한 일들이 교회 곳곳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예배 중에 말씀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감동적인 강론을 들으며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눈앞에 있는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의 삶을 지나쳐버리는 일, 불편한 사정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에 섣불리 ‘나와는 달라서’라는 선을 그으며 마음을 닫는 일, 자신은 그들과는 다른 처지라는 안도 속에 조금도 나누지 않고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으며, 그저 감동에만 머무르는 이중성은, 종교가 주는 위안의 본질을 무색하게 만들곤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기도 중에 뜨겁게 눈물을 흘리지만, 정작 그 말씀을 살아내는 일에는 너무도 미지근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우라는 말씀 앞에서는 침묵하는 이들, 아니 어쩌면 나 자신부터가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는 이 글을 쓰며 제 마음을 먼저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연극적 감수성은 ‘감정’의 문제이기보다는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허구 속 인물과는 거리를 두고 보며 감동을 소비할 수 있지만, 눈앞의 사람과는 그 감동을 삶으로 나눠야 하기에, 때로는 내 것을 조금 덜어줘야 하고, 내 시간을 내어야 하며, 내 존재를 드러내야 하기에 우리는 더 쉽게 눈을 돌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감동은 나눌 때 진짜가 되고, 감정은 사랑으로 건너갈 때 비로소 빛이 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며 저 자신을 다시 돌아봅니다. 저 또한 연극적 감수성의 양면성을 지닌 부족한 사람임을, 그래서 더욱 반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눈물은 삶이 되어야 하고, 감동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며, 말씀은 내 곁의 사람을 사랑하는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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