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전야

by 마르치아


“노을은 말이 없고, 우리는 그 앞에서 숙연해진다”


육지 사람들이 묻는다. "노을이 붉게 가장 아름다운 때는 언제에요." 나는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노을은 늘 아름답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붉게 타오르는 저녁은 태풍이 오기 전날이다. 하늘은 무언가를 예고하듯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깊은 붉음을 흘리고 바다는 그 빛을 고요히 삼킨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을이 가장 붉게 타오르는 저녁은 태풍이 오기 전날이다. 하늘은 불안정한 기압과 습도를 머금고 색을 쥐어짜듯 붉게 더 붉게 가장 붉게 바다 위에 노을을 흘린다. 사람들은 그 풍경 앞에서 숨을 멈추지만 정작 그 뒤에 닥쳐올 폭풍을 상상하지 못한다. 아름다움은 때때로 비극의 전조처럼 다가오고 가장 강렬한 순간은 곧 지나갈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듯 더 뜨겁게 타오른다. 그래서 나는 그 노을 앞에서 쉽게 감탄하지 못한다. 그 안에 담긴 긴장과 불안을 알고 있고 모든 찬란한 것은 끝을 향해 간다는 사실을 이미 너무 많이 배워버렸기 때문이다.


삶이란 끝을 품은 시작이고 사랑이란 상실을 포함한 헌신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동시에 잃을 준비를 해야 하고 붙잡을수록 더 겸허히 내려놓을 날을 생각해야 한다. 노을은 우리에게 그 진리를 묵묵히 가르친다. 끝날 줄 알면서도 붉게 타오르고 사라질 줄 알면서도 찬란함을 멈추지 않는 빛. 그것이 존재의 진실이다.


노을을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고백과도 닮아 있다. 가장 아름다운 말을 꺼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슴 어딘가가 아파야 하고 진심은 늘 이별을 품고 있다. 태풍 전날의 노을처럼 사랑도 떠나기 직전 가장 붉고 가장 진실해진다. 우리는 그 찰나의 눈빛을 오래 기억하게 되고 그날의 말투와 손끝을 끝내 잊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것이 노을의 슬픔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짜 같고 너무 진실해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그 모순된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태풍이 오는 줄 알면서도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란 어쩌면 희망을 가장 깊이 받아들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늘 상처를 수반하며 믿음은 반드시 무너질 가능성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는 이들만이 가장 붉은 것을 만난다.


사랑도 그렇다. 모든 것이 사라질 걸 알면서도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일. 그게 사랑이다. 분명 몰아치는 태풍을 인식하면서도 그 붉은 노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도 이와 같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마주하고 싶고 끝을 예감하면서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것이 사람이고 그것이 사랑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자기를 포기하는 일이라 했다. 사랑은 그 반대다. 끝까지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두려움을 넘어서 서로의 손을 붙드는 일. 그것은 삶의 가장 높은 형식의 용기이다.


그러나 사랑에 어리석은 사람들은 벼락이 치면 뒤로 숨는다. 천둥은 벼락이 친 후에 들리는 소리인데 사랑에 어리석은 이들은 그 소리만 들어도 마치 자기 존재에 닥친 재앙인 듯 과도하게 반응한다. 그들은 관계의 균열을 징조만으로 예단하고 상처받을 가능성을 감정의 실패로 착각하며 서둘러 몸을 뺀다. 다가올 고통을 상상만으로도 견디지 못한 채 사랑이라는 말의 무게가 실리는 순간 그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선다. 그들은 진심을 마주할 용기를 갖기보다는 차라리 사랑하지 않은 척하며 마음을 접고 무관심을 가장한다. 그들의 사랑은 파도가 없는 잔잔한 수면이어야만 유지되는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는 취약한 구조물이다. 고요한 하늘만을 사랑이라 믿고 햇살처럼 따뜻한 순간만을 진짜라고 여긴다. 하지만 사랑이란 오히려 태풍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사랑은 조용할 때가 아니라 위태로울 때 비로소 그 실체를 증명한다.


진짜 사랑은 벼락이 치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덮쳐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벼락이 쳐도 번개가 번쩍여도 생의 한가운데서 상대의 손을 끝내 놓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가장 높은 방식은 흔들리는 순간에 머무를 줄 아는 것이다. 고요한 날에만 사랑을 말하는 이는 아직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함께 흔들리고 함께 부서지고 함께 무너진 다음에도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이들. 그들이야말로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며 열정이 아니라 인내다. 사랑은 언약이고 언약은 고통 속에서만 그 진정성을 증명받는다. 그 언약을 감내하고 끝까지 걸어가는 자만이 마침내 사랑이 주는 깊은 침묵의 위로를 붉은 노을처럼 받아 안게 된다.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기다리는 사람들은 붉은 노을을 볼 자격이 주어진다. 그 자격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일시적 감정의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행위에서 오는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영혼이 자신의 전 존재를 던져 넣은 사랑의 과정 전체에 대한 우주의 응답이다. 그 자격은 마음의 불순물이 모두 가라앉고 삶의 상처가 고요히 엉겨 굳은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빛이다. 그 빛은 대개 외롭고 늦게 오며 짧지만 깊다.


어떤 삶의 고난이나 분명히 예견되는 환경의 어려움도 그들에게는 피하고 도망쳐야 할 재난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통과해야만 하는 불의 언덕이며 껴안아야 할 운명의 지형이다. 사랑은 그렇게 시련을 재료로 삼아 자신을 단련하고 단단한 마음은 바로 그 시련을 통해 가장 인간다운 얼굴을 얻는다. 그 얼굴로 마주한 사람만이 사랑을 오래 지킬 수 있고 마침내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더욱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진 사랑이 언젠가 붉은 노을 앞에 이르러 찬란히 빛나기를. 붉은 노을은 기다리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위로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고 견딘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마지막 증언이다. 시련과 폭풍을 껴안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붉디 붉은 하늘의 축복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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