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leto

by 마르치아


스폴레또에 도착하고 숙소를 잡았다. 낯선 방에 짐을 내려놓는 순간 이 도시의 시간이 나에게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가볍게 여장을 풀고 조용히 골목으로 나섰다. 두오모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목은 낮은 돌계단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깔려 있었고 작은 상점들과 포도 덩굴이 늘어진 담장들이 조용한 숨을 쉬고 있었다. 두오모 앞에 서자 마음이 괜히 차분해졌고 골목은 또 골목으로 이어지며 마치 나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 길을 내어주었다.


그러다 그 유명한 다리, 폰테 델레 토리 앞에 멈춰섰다. 우리는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깊은 계곡 아래로 바람이 스쳤고 돌로 쌓인 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묵직한 침묵 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와 땀이 배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 걷는 이 길에도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시간이 깔려 있겠지."


나는 그렇게 말했고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걸음을 옮기다 허기진 마음에 느낌 닿는 대로 한 식당에 들어섰다. 작은 입구, 간판도 눈에 띄지 않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알아차렸다. 아, 이곳은 오래전 수도원이었구나. 천장 높은 아치, 벽에 스며든 세월, 그리고 조용한 조명 아래 놓인 테이블들. 마치 식사가 아니라 기도를 드리는 듯한 고요한 공간이었다.


"그저 스쳐간 인연이었다면, 이렇게 오래 기억하지 않았겠죠.”우리는 로카 알보르노치아나 언덕 아래에서 정성껏 요리된 트러플 파스타를 나눴고 그 위에 흩뿌려진 얇은 송로 조각에 문득 나는 웃으며 말했다. "우리 노르챠에서 실컷 먹던 그 송로맛이네,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때의 기억이 음식보다 먼저 입안에 퍼져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골목을 걷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발걸음이 멈췄다. 기타와 재즈 베이스, 그리고 낮게 깔리는 건반 소리. 작은 클럽이었다. 낯선 도시의 밤, 불빛도 어두운 그곳이 우리를 불러세웠고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반겨주었다. 안은 작고 조용했으며 동양인은 우리 둘뿐이었다.


벽은 두껍고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그 누구의 시선도 차갑지 않았다. 그 밤, 그 공기, 그 리듬 안에서 나는 문득 일어나 춤을 추고 싶다는 작고 발칙한 상상을 품었다. 그 상상은 머릿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누구도 춤추지 않던 공간 한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 순간 그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음악에 맞춰 조용히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작은 어깨의 움직임, 손끝의 선, 천천히 흐르는 리듬에 스스로를 맡긴 채 나는 오직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춤을 췄다.


춤이 끝나자 잠시의 정적을 깨고 어디선가 작은 박수가 터졌다. 곧 그 박수는 퍼졌고 공간 전체가 내게 "고맙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때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와 아주 작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지금, 귀여운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 그 한마디에 나는 이 도시의 골목도, 두오모의 첨탑도, 다리 아래 계곡도, 트러플 향기까지도 모두 그의 향으로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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