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시작은 부끄러움을 아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참괴(慚愧)라 부른다. 참(慚)은 남을 향한 부끄러움이고 괴(愧)는 자기를 향한 부끄러움이다. 나는 이 두 글자가 내가 오래도록 살아온 삶의 결에 닮아 있다고 느낀다. 한없이 조심스럽고 누군가의 손등을 닿지 않게 바라보는 마음. 눈길을 주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그림자를 살피는 태도. 그 모든 것이 결국 염치(廉恥)에서 비롯된다.
누군가 내게 호의를 건넸을 때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당장 고개를 들 수 없었던 날들이 있다. 그건 감사이자 부끄러움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이 은혜를 받아도 될까 하는 마음이 속에서 일렁였고 그때 나는 참괴(慚愧)를 처음 배웠다. 누군가를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작고도 깊은 고개 숙임을 배우는 시간. 그건 마음의 기도였고 소리 없는 인사였다.
참괴(慚愧)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한 억지가 아니라 삶의 모든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조용히 존중하는 숨결이다. 말은 줄이고 마음은 채우는 일. 그리하여 결국 침묵이 품격이 되는 순간이다.
요즘 세상은 참괴(慚愧)를 눈치라고 부르고 염치(廉恥)를 답답함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조용한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지켜주는 마지막 등불이라고. 누군가를 대할 때 속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내가 너무 넘지 않았나 되묻는 그 마음. 스스로를 돌아보며 이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다 하며 조용히 되새기는 그 자성. 그 마음이 바로 참괴(慚愧)이며 염치(廉恥)이며 마음의 품격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숨 쉬는 빛이다.
나는 오늘도 그 빛 속에 있고 싶다. 향이 그렇듯 은은하게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는 향기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가도 오래도록 남아 잊히지 않는 존재로 머무르고 싶다. 사람들 사이를 조용히 지나가며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말 한마디 손끝 하나에도 염치(廉恥)가 묻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생의 끝자락에서 나를 돌아볼 때 내가 남긴 향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피어났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