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가까울수록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편안하다는 이유로, 오래 함께했다는 이유로, 우리는 정작 품어야 할 사람에게 더 많은 무례를 범하고 만다. 때로는 그 무례조차 무례인지 모른 채 미안함보다 익숙함이 먼저 앞선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에게 악당이 되기 쉬운 법인데 우리는 그것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꼭 무엇을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말 한 마디. 무심한 눈빛 하나가 그날 하루를 무겁게 만들기도 하고 아주 오래도록 마음에 스미는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이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다 알아줄 거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줄 거라고. 하지만 이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는 일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에 더 가깝다. 이해받기를 바라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음조차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건넬 수 있는 애정의 모양도 속도도 다르다. 어떤 이는 말로 다하지 않아도 마음을 다 보여주지만 또 어떤 이는 온 마음을 다 주고도 그 표현에 서툴러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니 받는 만큼 주지 못해도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이 부족함이 아니라 서로 다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서 진짜 마음이 자란다. 나에겐 그저 농담처럼 툭 던진 말이 누군가에겐 가슴 시린 비난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말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사랑을 건넬 수 있다.
부탁을 건넬 때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온전한 권한을 상대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은 짐이 아니라 초대가 되고 억지가 아닌 신뢰가 된다. 사과 또한 그렇다. 내가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기 전에 그 마음이 상했는지를 먼저 살피는 일. 그 따뜻한 눈길 하나가 관계를 단단하게 지켜낸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열하다 보면 너무 많은 규칙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은 이것들이 모두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사랑이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조심스러움과 배려들. 관계란 그렇게 무르익는다. 양보라는 숨결 하나. 참아내는 마음 하나. 묵묵히 기다리는 손길 하나가 쌓여 어느 날 눈부시게 피어난다.
좋은 관계는 멀리 있지 않다. 누군가의 커다란 헌신이나 눈부신 이벤트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날의 따뜻한 눈빛. 고요히 내 이름을 불러주는 낮은 목소리. 다정한 밥 한 끼의 온기 같은 데 숨어 있다.
좋은 관계란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서로의 말끝을 조심하는 사이이며 내가 놓치는 것을 조용히 채워주는 손길이 있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공기가 있는 곳이다. 멀리 나아가지 않아도 오늘 하루 이 자리에 함께 머물러 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곧 좋은 관계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런 관계 안에서는 침묵도 말이 되고 잠시의 거리가 오히려 서로를 더 애틋하게 만든다. 가끔은 틀어질 수도 있다. 오해하고 상처 주고 멀어지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좋은 관계란 그 모든 위기를 건널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할 수 있는 관계. 한 번 다툰다고 서운한 말 한마디에 돌아서지 않는 그 깊은 마음이 서로를 묶어주는 진짜 인연이 된다.
좋은 관계에는 경쟁이 없고 네가 더 했느니 내가 더 참았느니 하는 계산이 없다. 그저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고백 하나면 충분하다. 어깨에 기대어 함께 울어주고 아무 말 없이도 서로의 하루를 응원해주는 사람. 어쩌면 그런 관계 하나가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깊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사랑하는 이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말투를 쓰고 내 곁의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 사람의 하루에 내가 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던진 말 한 마디가 그날의 빛이었기를 바라며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 조용히 오래도록 머물 수 있기를 바란다.
좋은 관계란 결국 서로가 서로의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는 일.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그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관계.
마침내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지도 모른다. 서툴지만 진심으로. 조금은 느리지만 끝내 도달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시간이 먼 기억으로 물러나고 서로의 얼굴에서 삶의 주름을 읽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그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다정했던 날들의 말투. 침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신뢰. 같은 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온 발걸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우리를 지켜주었는지를.
사랑이란 결국 거창한 희생이나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매일의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라는 것을. 서로에게 조용히 오래도록 남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렇게 좋은 관계 하나를 지켜낸다는 것은 결국 삶에서 가장 깊고도 따뜻한 기적 하나를 품고 살아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