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누군가 조금 열어둔
틈에서 비롯된다

by 마르치아

사랑은 언제나 큰소리로 찾아오지 않았다. 우렁찬 노크도,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열정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했다. 바람이 살짝 흔들고 간 커튼 자락처럼, 조금 열어 놓은 문틈으로 흘러든 햇살처럼, 사랑은 그렇게 스며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난 것 같은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알아차릴 틈도 없이, 조용히, 말없이, 나를 건드렸다.




우리는 종종 마음의 문을 꼭 닫은 채 살아간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들어오는 누구에게도 휘청이지 않기 위해서. 너무 많은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굳은살이 박이고, 그 위로 단단한 벽이 세워진다. 그 벽은 누군가에게는 무관심처럼 보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차가움으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벽은 방어였다. 다시는 무너지지 않기 위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해도 완전히 잠그지는 못한다. 희미하게 남은 기대, 어쩌면 습관처럼 몸에 밴 그리움 때문일까. 우리는 꼭 한 사람의 숨결만큼의 틈을 남긴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그 틈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사랑은 그 틈을 알아보고 찾아온다.




사랑은 망설이다가, 다시 돌아설까 하다가, 문틈 사이로 조심스레 발끝을 내민다. 재촉하지 않고, 들이밀지 않고, 내가 닫아버릴까 봐 조심하면서도 분명히 그 자리에 머문다. 그때 나는 문득 알게 된다. 사랑이란 것은 성큼 다가와서 나를 휘어잡는 게 아니라, 내가 아주 조금 마음을 열었을 때, 그 빈 공간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것이라는 걸. 사랑은 내가 열어둔 만큼만 들어온다. 아니,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커피 잔 위로 고요히 피어오르는 김처럼, 말없이 옆을 지켜주는 무게처럼, 사랑은 그렇게 서서히, 아주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처음엔 몰랐다. 그게 사랑인지, 위로인지, 아니면 그냥 스쳐 가는 다정인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되레 나를 살리는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랑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문틈 사이로 흘러드는 작은 온기라는 걸.






그래서 나는 이제 문을 잠그지 않는다. 조금 열어둔 채로, 아주 조용히 살아간다. 누군가가 그 틈을 지나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든 돌아설 수 있지만, 언젠가는 머무를 수 있도록. 그 작은 여백이 나를 외롭게 할 때도 있지만, 그 문틈이야말로 내가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아직, 사랑을 믿는다. 그러니 이대로 괜찮다. 조금 열어 놓은 문틈에서 비롯된 그 사랑이, 언젠가 나에게 온전히 닿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나는 조용히 문을 닫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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