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당신이라는 싯점

모든 이름을 건너온 문장이다

by 마르치아


이 글은 당신이라는 한 사람에게 닿기 위해,세상의 모든 이름을 건너온 문장이다


나를 주어로 글을 쓸 때 어디까지 정직해야 하지? 라는 물음과 매번 싸우게 된다. 반대로 정직을 내세워 뻔뻔스러워지지 않기가 어렵고 수다 떨지 않기가 어려운데 그를 주어로 문장을 쓰자면 나로부터 그로 건너가기가 어렵다. 글에서 1인칭으로 또는 그인 3인칭으로만은 세상을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어디 글 뿐이랴. 인간의 삶 또한 1인칭만으로는 왠지 쓸쓸하다.


1인칭의 곁에 그 혹은 그녀들이 곁에 있어야 북닥이고 북저거리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무수한 그 혹은 그녀들 하나를 끌어 당김으로써, 그녀 혹은 그는 비로소 2인칭이 된다. 3인칭을 2인칭 당신으로 변화시켜 끌어당기는 몸과 마음의 작용을 나는 쑥스럽지만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에게 3인칭에서 2인칭이 되어, 그 ‘당신’을 나의 또 다른 자아인 것처럼 애지중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세월은 야속하고 무정하다. 시간의 농간으로 우리는 하나라는 착각에서 깨어나고, 2인치의 너는 다시 저 멀리 3인칭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다 몇몇은 끝내 남남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글을 적을 때 분명 많은 3인칭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글을 적지만, 사실 내 글은 내밀성의 순정으로 개별적인 독자에게 읽혀지길 원한다. 그 사귐으로 세상에 묶인 목줄이 헐거워지길 원한다. 글을 써서 세상에 말을 걸 때, 독자는 사실 당신 한 사람뿐이다. 나의 독자는 무수한 3인칭 아닌, 단 하나의 독자, 당신일 뿐이다. 나는 글로 그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다. 당신이 눈치를 채든 채지 않든. 질투가 날 정도로 날렵하고 명징한 문장을 고르느라 하루를 내가 아닌 당신으로 살아낸다. 나의 글로 세상을 넘나드는 안내 표지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문장을 써 내려간다.


무수한 문장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먼저 느꼈던 고통, 세상과 악수해서 살아남는 법, 당신이 고독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나는 계속 쓰고 싶다. 왜 하루가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일에 목숨 걸고 사는지, 내 언어로 알려주고 싶다. 당신의 고통을 단순화시키고 싶지 않다. 나는 당신의 온도에 닿고 싶다.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다는 말 대신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건 사랑보다 덜 부끄러운 표현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능력이라는 걸. 아무것도 고치려 들지 않고, 달래지도 않고, 그저 함께 어두워질 수 있는 마음. 당신이 아무 말 없이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그 무너짐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을 것이다. 질문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다만 당신의 침묵과 같은 속도로 숨 쉬며.


우리는 다들 너무 많은 것을 해명하려 한다.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러나 어떤 날은 이해보다 동행이 먼저 와야 할 때가 있다. 당신의 침묵에 내 말들이 흘러들지 않도록 나는 오늘, 조용히 물러나 당신을 위한 여백으로 머물고 싶다.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너지는 누군가를 위해 말 대신 따뜻한 담요 하나를 펴두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단 한 사람의 체온에 닿고 싶다. 그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 곁에 작은 불빛이 되고 싶어서.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이 삶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은 충분하다는 것. 매일 조금씩 부서지면서도, 다시 걷고, 다시 웃고, 다시 사람들 곁에 선 당신은 이미 기적처럼 단단하다는 것. 나는 이 글로 당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조금은 덜 외로워졌으면 하고, 세상이 조금은 덜 가혹하게 느껴졌으면 하고, 무수한 이름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통해 “나도 살아도 되겠다”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나는 오늘도 당신을 향해 문장을 건넨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당신의 고통이 언젠가 이 글 앞에서 작게라도 한숨처럼 흘러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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