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나를 살아가게 한다
오랜만에 당신의 꿈을 꾸었다.
꿈속의 당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 속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눈을 뜬 아침, 가슴 한구석이 오래도록 저렸다. 마음이란 그렇게 무의식 속에서도 당신을 찾아가는 모양이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 사랑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당신이 없는 시간은 처음엔 고요했고, 그다음엔 무너졌다가, 다시 견디는 법을 배워갔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글을 썼고, 쓰다 보면 울음을 삼키는 법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렇게 문장 안에서 당신을 불러내고, 또다시 놓아주는 일을 반복했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면서도 또다시 이어가는 고백. 그것이 사랑의 다른 얼굴임을 이제는 안다.
누군가는 나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사랑했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질문엔 정답이 없다. 사랑이란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이었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설명보다 감각으로 남아 있었고, 그 감각이 나를 살아가게 했다. 향기처럼, 온기처럼. 바람이 불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뒷모습처럼.
이제는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도, 다시 돌아와 줬으면 하는 기대도 없다. 그 모든 건 한 시절의 간절함으로 충분했고, 나는 그 계절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받았다. 마음이란 게 그렇다. 차지하지 않고도 품을 수 있고, 마주하지 않아도 지켜볼 수 있다. 사랑은 그렇게 방향 없이 흐르다가도 누군가의 조용한 삶을 다정히 감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산다. 누군가를 향해 끝까지 다녀온 그 사랑의 여정이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삶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내 삶의 한복판에서 다시 피어나기를.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는 따뜻한 마음을 누군가와 나누게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생기기를. 조용한 오후에 햇살처럼 다가와 당신이 놓쳤던 따뜻함을 다시 일깨워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는 오늘도 문장 속에서 당신을 건너고 있다. 다 써낸 줄 알았던 이야기가 다시 입술 끝에 머물고, 비워낸 마음 위에 또다시 당신의 이름이 쌓인다. 잊지 않기로 한 적도 없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한 적도 없지만, 당신은 늘 그렇게 고요히 머물러 있다. 내 삶에 가장 조용하고 깊은 파문으로. 그래서 이 모든 글은 결국 당신에게로 닿아 있다. 흩어지고, 무너지고, 다시 살아내는 모든 시간 속에서 나는 사랑을, 그리움을, 당신을 여전히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리움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살아가게 하는 방식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