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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당신이라는 싯점

사랑은 다만 살아 있는 쪽의 몫이었다.

by 마르치아
오랜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 사이 나는 많은 것들을 지나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보내며 살아냈다. 그런데도 문득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마음이라는 것은 참 묘해서, 기억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당신을 지나, 당신을 품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끝난 건 관계였고, 멈춘 건 함께한 시간이었지만, 내 안의 당신은 아직도 걸어 다니고 있었다. 당신이 좋아하던 노래를 듣게 되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조심스레 음량을 줄이고 한참을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당신의 웃음과 눈빛을 찾고, 그때는 미처 몰랐던 감정을 뒤늦게 안아주곤 했다.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시간은 어떤 감정들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아주 오래된 가방처럼, 입구는 닫혔지만 안에는 아직도 무게가 남아 있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든 정리하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숨기지도, 외면하지도 않은 채로.




이제는 당신을 그리워해도 괜찮다고, 더는 나를 책망하지 않기로 했다. 당신을 사랑했던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랑조차 결국 나를 지켜온 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지만, 누군가를 향했던 그 진심만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자취로 남을 것이다. 사랑은 다만, 살아 있는 쪽의 몫이었다.




그리고 나는 살아 있다. 아직도 누군가를 다정히 바라볼 줄 알고, 여전히 어떤 인연이 마음속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오늘도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했던 나를 기억하며 글을 쓴다. 그리움은 줄지 않았지만, 그 그리움을 껴안은 내가 조금은 단단해졌음을 느끼며. 언젠가,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쓰고 있고, 살아가고 있으며, 당신을 떠나온 그 길 위에서 여전히 사랑을 배운다.




가끔은 그립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한참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있다. 그 시간들은 고요하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하는 침묵, 그것이 내 마음에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그 고요를 품은 채 살아간다. 당신 없는 하루를, 그러나 당신을 잊지 않는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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