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묻지 않았기에......
나는 요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좋다.
너무 많은 말이 쏟아지는 세상이라,
오히려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그런지 네가 보낸 그 짧은 인사가
그날따라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잘 지내죠?"
그 평범한 다섯 글자가
마치 누군가의 사후를 전하는 부고처럼 느껴졌으니까.
뭔가 하나가 끝났다는 직감.
하지만 동시에,
그 말을 꺼낸 네가 얼마나 오래 고민했을지도 상상하게 되는 오후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고,
사실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우리 사이엔 너무 많은 말들이 있었고,
또 너무 많은 말들이 없었다.
한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고받던 안부.
햇살은 어떤지, 밥은 먹었는지,
네가 좋아하던 작고 쓸데없는 것들을 나는 다 외우고 있었는데.
이젠 그 모든 것들이 사라졌고,
우리 사이엔 묵음의 강이 흘렀다.
건널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밥 먹었어?”
“기분은 어때?”
이런 질문 하나가 지금의 나에겐 너무 큰 파문이 돼버렸다.
누군가가 그걸 묻는다면,
나는 울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너는 그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다.
그 다섯 글자의 인사가
'너 괜찮지? 나도 잘 지내고 있어.' 라는 말이 아니라,
'너 아직도 힘들어? 사실 나도 그래.'
라는, 조용한 고백이었다는 걸.
네가 보낸 그 말은
인사처럼 가장한 마지막 문장이었고,
나는 대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마지막을 인정해버렸다.
혹시라도 네가 내 글을 본다면,
이 문장을 읽는다면,
나는 지금도 하루에 한 번쯤은 네 생각을 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좋아서도 아니고, 미워서도 아니고,
그냥, 네가 내 안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라는 이름이
이제 내 문장 구조 안에서 하나의 쉼표처럼 남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누군가를 사랑할 때,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고,
조금 더 침묵을 배운 사람이다.
그건 당신 때문이야.
그리고 그것을 너도 알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이제는…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묻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