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무를 그리며
할아버지는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늘 나무에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나무는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나무와 닮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고, 시공간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물질과 에너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나무 한 그루의 그림으로 내게 설명해주셨다.
나는 어느 날, 클림트의 ‘생명나무’를 보고 문득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 그림은 바로, 어린 날 할아버지가 내게 그려주시던
그 생명나무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때 나는 너무도 크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내게 아비였고, 우주였으며,
백과사전이자 내면의 제3의 목소리였고,
무엇보다 ‘지혜 그 자체’였다.
제주 산야를 다니다 보면, 홀로 선 나무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늘 물음이 생기면 자연에게, 별에게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 가르침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나무를 만나면
품에 덥썩 안기곤 한다.
그 나무는 단지 나무가 아니었다.
그건 곧, 생명의 나무였고
할아버지가 진을 빼며 네댓 살 손녀에게 남기고 떠난
지혜의 나무였다.
그 나무는 물상의 나무이기도 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자,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존중이었다.
"나무에게 물어보라."
그 말씀은 세상에서 다시 성찰되어야 할,
참된 '나'로서의 정체성을 가리킨 것이었을지 모른다.
길을 지나다 보면 유독 마음이 기울어지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가 바위처럼 강하고 크다고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은다.
그 나무는 나보다 더 오래 살아왔고,
더 조용히 버텨왔고,
어쩌면 나보다 더 신에 가까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나무들이 모여 있는 숲은
성지처럼 경건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서로 다른 종의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최고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무도, 짐승도, 바다도, 산도
우리와 같은 위치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결코 인간 아래 있지 않다.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오만을 버리고,
한 포기의 풀과도 같은 존재라는 겸허함으로
나는 나머지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