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벼락이 치면 팔을 잃는다. 뿌리 깊이 박힌 존재조차 한순간의 번개에 의해 삶의 일부를 잃고 만다. 그러나 나무는 멈추지 않는다. 나무는 살아야 하기에 본능적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제껏 햇빛을 향해 뻗어오던 가지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생존은 방향의 수정이다. 바람의 기억이 스친 그 반대편, 아직 낯설고 불안한 곳을 향해 나무는 새 가지를 틔운다. 그 선택은 단순한 회피가 아닌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다.
삶도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나무처럼, 어떤 인연이든 사건이든 예기치 못한 번개의 방식으로 삶의 일부를 잃는다. 사랑은 끊기고 우정은 멀어지며 의미 있던 관계들이 비명처럼 사라진다. 마치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가듯 아픈 이별 앞에 인간은 무력해진다. 그러나 그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는 다시 살아야 하며 살아낸다는 것은 방향을 다시 정립하는 일이다. 고통은 우리가 다시 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인간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그 기억의 잔해 위에 새 생명을 올려두는 것은 가능하다. 절단의 자리에서 새싹이 트이고 고통의 중심에서 삶은 다시 방향을 틀 수 있다. 상처는 멈춤이 아니라 전환점이다. 자주 곧지 못한 나무를 본다. 굽고 비틀리고 제 방향을 잃은 듯한 나무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굽은 선마다 생의 전쟁이 새겨져 있다. 폭풍에 견뎌냈고 꺾임을 이겨냈고 벌레를 이겨낸 흔적이다. 인간도 이와 같아서 무사한 삶을 산 이보다 자주 무너지고 다시 일어난 이들이 더 깊은 뿌리를 가진다. 삶의 주름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연약함의 자국이 아니라 견뎌온 자의 문장이다.
어떤 인연은 마치 나무에 붙은 덧이불처럼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겉모습만 보고 쉽게 다가와 끝내는 깊은 흉터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들. 그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나 이런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어딘가에 매여 있다. 어제는 그 매임이 슬퍼서 친구와 밤새 와인을 마셨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면서도 동시에 고독한 존재다. 이 역설 속에서 유대란 언제나 복잡한 감정이다.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그 매임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발견한다. 필연과 선택 사이 우리는 인연이라는 기이한 그물 안에서 움직인다.
어제 밤 친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내 고독의 리듬을 닮아 있었다. 나의 비통함, 나의 묵직한 속울음, 문장과 문장 사이에 고여 있던 무언의 메시지들까지도 그는 알아챘다. 나는 이상하게도 부끄럽지 않았다. 감추고 싶지도 않았다. 나를 감싸 안는 이 조용한 동행이 얼마나 따뜻한 안전지대인지 새삼 깨달았다.
와인은 깊은 흙냄새처럼 진했고 모닥불의 타닥임은 나의 안쪽까지 데워주었다. 멀리서 별이 반짝였고 새들이 울었다. 우리는 끝내는 말을 잊었지만 말이 아닌 이해가 있었고 이해 너머엔 연대가 있었다. 이별로 남겨진 상처는 여전히 아물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그 아픔의 자리에 머물 수는 없다. 거기에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별의 자리에서 나무처럼 다시 새순을 틔워야 한다.
삶은 이중적이다. 나를 데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도 모르는 사이 서늘해지는 내 안의 온도에 문득 놀라게 된다. 나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따뜻함만은 아니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이해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피어나는 감정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이의 침묵은 그보다 더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고요 속에서 듣는 존재의 확인. 그것은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의 언어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계곡을 오르내릴 것이다. 그러나 그 오르막과 내리막의 고단함 끝에 한 모금 와인이 기다린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웃게 했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견딘 자에게 주어진 작은 호사다. 나는 땅을 일구며 허리를 굽혀 살아야 할 사람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밤하늘 아래 모닥불 곁에서 웃을 권리가 있다. 이런 위로의 밤이 있기에 나는 다시 살아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고 이제야 어렴풋이 어떤 사람으로 남아야 할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