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에 대하여

우리가 잊고있는 순수

by 마르치아



나는 어느 때부터 날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도 어릴 적 여주 작은 이모네 텃밭에서 이모가 따 주던 가지 맛을 보게 된 이후 같았다. 잘 여문 가지를 툭 따서 이모의 행주치마에 쓱쓱 문질러 톡 분질러 내게 먹으라 권했는데, 난 익숙한 맛이 아니라 손사래를 치자 이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경화가 이 가지맛을 알게 되면, 어른 돼서 이모 생각이 날 거야. 어서 먹어봐, 응?”


나는 그날, 가지 날것을 먹고 드디어 날것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버섯도 날로 씹어보고, 특유의 숲의 맛을 유추해보기도 했다. 들은 풍월로 향긋한 풀을 따서 염소처럼 씹으며 콧노래를 부르고, 보리수 한 웅큼을 집어넣고 인생의 떫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이 날내 나는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무 이해득실 없이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날내 나는 사람이 미치도록 그리운 나이. 내 나이, 오십이 넘었다.


포장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인간관계가 더 좋아지는 때가 있다. 나이가 드니 사람을 대할 때 제일 해가 되는 건 가식임을 깨닫는다. 나는 가슴으로 만나는 날내 나는 사람과 막걸리 한 잔 기울이고 싶다. 누구라도 좋다. 이렇게 비가 퍼붓는 날에는, 그러고 싶다. 어떨 땐 사람이 사는 게 각자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다가, 또 어떨 땐 사람 사는 거 별거 있겠나, 다 똑같지—이 두 생각을 왔다갔다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살다보면, 언젠가는 해탈 비슷한 지점에 도달하게 되지 않을까.


웃음과 눈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날것의 인생. 그 속에서 나는, 오늘도 웃을 이유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렇게, 끝까지 웃기고 싶다. 먼저 나부터 웃기며, 나로 인해 누군가가 오늘 한 번 더 웃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나는 믿는다.


비가 퍼붓는 날이면 익지도 말고, 설탕도 두르지 말고 그냥 그대, 날것인 채로 내 앞에 와 앉아주오. 익숙한 체 하지 말고, 미소도 덜 닦고, 가끔은 떫은 표정 그대로—그것으로 충분하니. 우리, 익기 전에 만나 서로를 씹고, 삼키고, 웃으며 인생이라는 밭에 다시 씨앗 하나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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