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을 믿는일
살다 보면, 내가 삶의 가장 가느다란 끝자락에 서 있는 듯한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자리. 말 그대로,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추락할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삶이 말라가는 기분이 드는 그런 순간이다. 그럴 때 나는 내 마음을 ‘백척간두’ 위에 올려놓는다.
‘백척간두 진일보, 시방세계 현전신.’ 이 글귀는 조선 후기 거상이었던 임상옥이 중국에서 인삼 거래를 막아선 상인들의 담합 앞에서, 추사 김정희에게 지혜를 구해 받은 문장이다. 백 척은 1척이 약 3.3센티미터이니, 백 척이면 삼십 미터가 넘는다. 그 긴 대나무 꼭대기, 하늘과 땅 사이의 어딘가, 가장 위태로운 그곳에 서 있는 심정이 이 말 안에 담겨 있다.
어제 카페 정원에 들렀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보았다. 가느다란 몸통이 바람에 휘청이며 춤추듯 흔들리는데도, 그 뿌리는 단단히 땅을 붙들고 있었다. 흔들리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그 대나무를 보며 문득, 오래전 들었던 그 문장이 떠올랐다. 삶의 꼭대기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한 걸음’이라는 것.
임상옥은 바로 그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인삼 창고에 불을 지르겠다고 선언했고, 놀란 상인들은 오히려 그의 뜻대로 높은 값에 인삼을 사게 되었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위기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결단한 그의 용기였다.
사람은 누구나 삶에서 백척간두 위에 설 때가 있다. 사면이 막히고, 길이 보이지 않고, 아무리 방법을 찾아도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이 온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외부의 조언이나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믿는 마음이다. 누구도 나 대신 나를 믿어줄 수 없다.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 자기 신뢰가 바로 ‘용기’이며, 그것이 ‘지혜’가 된다. 긍정이란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이 아니다. 진짜 긍정은 “안 되는 게 어딨어, 어떻게든 길이 있을 거야”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이 결국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시방세계—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세계를 연다.
대나무야, 어제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이 문장을 꺼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의 휘어짐이 내 마음을 흔들었고, 네 단단한 뿌리가 내 망설임을 다독여주었다. 너의 침묵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제, 한 걸음 내딛을 시간이라고. 그리고 나는 오늘, 내 마음의 꼭대기에서 조용히 발을 떼기로 했다. 내 앞에 펼쳐질 시방세계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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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세계현전신
#흔들리되부러지지말자
#대나무의지혜
#내마음을내가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