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자비

by 마르치아


살다 보면 우리는 용서를 마주해야 할 순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용서는 단순한 말이나 결심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긴 여정이다. 지나온 시간과 관계 속에서 용서가 가능할까 묻는 순간, 나는 한동안 그 질문 앞에 머물렀다.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 그의 흔적을 되짚어 보고, 그가 왜 떠났는지 스스로 설명을 찾아보려 애쓰는 과정. 그러나 그 과정이 불편하고 쓰라릴지라도, 결국 용서는 두 마음이 동시에 아파하며 마주하는 깊은 공감의 상태가 된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완전한 용서는 없다. 그것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나는 그 완전함을 흉내 내며 상처와 사랑 사이에서 조금씩 나아갈 뿐이다.


때때로 그가 나를 아프게 했다는 사실보다, 내가 끝내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래서 자비는 용서보다 더 넓은 마음의 그릇이다. 자비는 상대를 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놓아주는 선택이다. 나는 오랜 시간 그의 말과 표정, 침묵 속의 의미를 해석하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몸도, 마음도 정지된 채 하루를 겨우 버텨내는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그를 용서하기 위해 그가 나를 떠난 이유를 백 가지나 적어 내려갔다. 그러나 그 답을 찾으려 애쓸수록 마음은 더욱 흔들렸고, 결국 패닉에 휩싸이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몇 번이나 메시지를 쓸까, 전화를 할까 고민했다. 그가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이 부담이 될까 걱정하면서도, 그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라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망설임 끝에는 언제나 침묵이 남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나를 붙잡고 있던 질문들은 점점 무거워졌다.


자비란 이제 그 해석을 멈추는 것이다. 그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나는 더 이상 답을 찾지 않기로 했다. 그 질문에서 벗어나고 나 자신을 해방시키려 한다.


자비는 어떤 결과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나는 나 혼자 괜찮아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나는 더는 그에게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미움도 기대도 내려놓고, 그의 삶을 조용히 하느님의 손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자비란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더 아껴주기 시작할 때 비로소 흘러나오는 사랑이다. 그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버텨온 나 자신을 위한 사랑이다.


자비는 멀리서 용서하는 척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다하지 못한 감정을 조용히 덮어주는 일이다.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지 않도록, 내 마음이 단단해지도록. 나는 더 이상 그를 내 마음속에 들이지 않아도, 나의 마음은 여전히 부드럽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제 깨닫는다. 자비는 단순한 용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하는 온전한 자유이며, 더 이상 상처 속에 머물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용서는 나를 묶어두었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고, 자비는 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제 그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떠나더라도, 끝내 사과하지 않더라도, 나의 삶은 그의 행동이 아닌, 나 자신의 선택으로 정의된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사랑을 택할 것이며, 그 사랑은 나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서로가 조금 더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조용히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미움도 원망도 없이, 그냥 오랜 시간 동안 지나쳐 온 삶의 한 조각으로서.


그러므로 나는 오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속삭인다.


"나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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