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축일을 기념하며
사랑은 끝까지 남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때로, 끝까지 남은 자는 오해받는다.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다. 사람들이 다 떠난 그 새벽, 그녀는 무덤 앞에 있었다.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한 향유를 품에 안고, 살아남은 자의 숙명처럼 울고 있었다.
그녀는 ‘죄 많은 여자’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지고 살아야 했다. 회개의 상징, 향유를 붓던 여자, 그 발 아래 무릎 꿇고 눈물로 씻기고 머리카락으로 닦았던 여자. 그러나 복음서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였다는 말은 없다. 그녀는 일곱 마귀에게서 해방된 여인이었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님께 바친 제자였다.
왜 그녀였을까. 왜 부활의 첫 증거자가 그 여인이어야 했을까. 사람들은 묻는다. 그러나 나는 되묻는다. 왜 그녀가 아니었어야 했느냐고. 끝까지 곁에 있었던 사람. 죽음까지 동행한 사람. 사랑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사람. 그녀가 아니면 누가 그분의 부활을 증언할 수 있었겠는가.
그녀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보다, 주님이 사라졌다는 두려움으로 먼저 울었다. 세상 누구보다도 먼저 부활을 마주한 여인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며 서 있었다는 사실이 나는 참 좋다. 그녀도 우리처럼 몰랐고, 흔들렸고, 그러면서도 사랑했다.
예수님은 그 흔들림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마리아야.” 그 단 한 마디. 이름 하나에 그녀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누구의 설명도 없이, 그분의 목소리 하나로 부활은 그녀 안에서 현실이 되었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묵상한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도, 바로 그 순간처럼 오는 것이 아닐까. 설명이 아니라 부름으로.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주님은 우리를 논리로 설득하지 않으신다. 그저 이름을 부르신다. 깊은 곳에서, 우리를 깨우는 음성으로.
그녀는 그 소명을 안고 달려갔다. 숨이 차고,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분이 살아 계시다고. 내가 그분을 보았노라고. 외쳤다. 복음을 처음으로 전한 자. ‘사도의 사도’라는 별칭은 그렇게 그녀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오랫동안 ‘회개한 여인’의 초상 속에 가두었다. 수많은 예술 작품 속에서도 그녀는 늘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후회 어린 눈빛으로만 등장했다. 사랑이 아니라 슬픔의 얼굴로. 지혜가 아니라 눈물의 상징으로만 남겨졌다.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녀의 기념일을 ‘축일’로 격상시켰다. 이것은 단지 신학적 복원이 아니라, 사랑이 끝내 진실을 이긴 사건이었다. 무덤 앞에서 울던 여인의 진심이 2000년의 시간 끝에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나는 오늘, 그녀의 축일에 글을 쓴다. 나 또한 한때는 무너졌고. 한때는 오해받았고. 그럼에도 사랑을 버리지 못했던 그녀와 비슷한 마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처럼 나는 무덤 앞에서 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될 때. 누군가를 다시 만나고 싶어질 때. 그리움이 너무 벅차서 입을 열기도 전에 눈물이 터져 나올 때. 그때 나는, 그녀처럼 이름을 듣고 싶다. “마르치아야.” 나를 사랑으로 불러줄 그 음성을.
그리고 다시 달려가고 싶다. 내가 그분을 보았노라고. 그분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내 안에 머무르고 계시노라고. 세상에 전하고 싶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묻는다. 그녀는 왜 무덤 앞에 있었을까. 그녀는 왜 오해받았을까. 그녀는 왜 첫 증거자가 되었을까.
그 대답을 찾아, 나도 나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다. 그 울음 끝에서 그분이 나를 불러주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