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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至文) 에서 읽다.

가장 빼어난 글이 내 손가락에.....

by 마르치아


굽이굽이 돌아온 길


어떻게 돌아왔는지


어디서부터 맺히고


어디서부터 풀어질지


오십 년을 살아도 모를 일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비틀거렸던 생각과


허공에 맴도는 언어들의 유희


꼭꼭 눌러 쓴 고독한 생의 기록


그것은 지문이었다


가장 빛나는 삶의 이력


*지문 (至文) : 가장 빼어난 글을 가르킴







나는 내 손을 자주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세월이 쌓여 있다. 누군가를 붙잡으려다 놓친 흔적도 있고, 기도하던 새벽의 떨림도 있다. 손금보다 더 미세한 무늬 속에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세상은 언제나 나를 재촉했지만 손끝의 무늬만큼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을 밀어내며 단단히 버티는 생의 언어였다.


지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어릴 적 진흙놀이를 하던 날도, 서류에 사인을 하던 날도, 누군가의 뺨을 어루만지던 순간도 같은 무늬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무늬가 나를 증명하는 유일한 문장이라 생각한다. 누가 나를 몰라본다 해도 이 손끝의 무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삶이 걸어온 길의 연대기이며 눈물과 웃음과 실패가 새긴 기록이다.


살다 보면 기억이 흐려지고 이름이 바뀌고 약속이 사라진다. 그러나 지문은 남는다. 그것은 잊히지 않는 나의 근원이다. 나는 그 사실이 위로가 된다. 세상이 나를 모른다 해도 하느님은 이 무늬로 나를 알아보실 것이다. 그분이 내게 손을 내미실 때 나는 그 손을 알아볼 것이다.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무늬이기 때문이다.


내가 쓴 글들도 결국 지문이었다. 종이에 눌러 쓴 문장들은 내 마음의 결을 따라 흘렀다. 그 글들은 완벽하지 않았다. 때로는 얼룩지고 찢기고 지워졌지만 그 안에 진심이 있었다. 나는 그 진심을 믿었다. 글은 나를 구원하지 않았지만 나를 증언했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않아도 괜찮았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꼈다.


세월이 지나면 손끝의 주름이 늘어난다. 그러나 그 속에는 더 깊은 문장이 새겨진다. 나는 이제 나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손을 펴서 보여준다. 이 무늬를 보라. 이 무늬가 나의 삶이다. 나는 이 무늬로 울었고 이 무늬로 사랑했다. 누군가의 등을 두드리고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던 손끝으로 지금 이 문장을 쓴다.


살아온 모든 시간이 나를 이 자리로 데려왔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굽이였든 지금의 나는 그 모든 길의 합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미련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건 단지 무늬일 뿐이다. 무늬는 잘못도 아니고 영광도 아니다. 단지 존재의 증거다. 나는 그 증거를 사랑한다.


언젠가 내 손끝의 무늬가 닳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무늬는 바람처럼 남을 것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며 미소 짓는다면 그것이 내 지문의 마지막 흔적이리라. 나는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 기록처럼 남아 바람에 읽히는 문장으로.


삶의 무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도 나를 따라 흐른다. 그리고 그 무늬가 내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다만 내 지문대로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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