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거기서 안녕한가요
가을이 깊어만 간다. 그대는 그곳에서 평안한가요. 나는 몇 번이나 그대에게 편지를 썼다가 지웠다가 그렇게 미어지는 가을을 보낸다. 설핏 그대가 그리울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혹시 그대와 내가 함께 보았던 하현달이 걸려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현달이 떠 있으면 그대를 본 것처럼 환하게 웃고 하현달이 없으면 없는 대로 멋적게 웃는다. 그렇게 웃으며 마음을 달랜다.
열정이 끓어넘치던 시절에 내 곁에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를 다독이던 당신이 그립다. 그 손길의 온기가 바람처럼 남아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이 불거나 향긋한 내음이 나면 나는 당신을 그리워한다. 머리가 너무 아파 기댈 곳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애써 당신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어깨를 내어주던 당신이 새삼 고맙다. 계절이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그 계절 안에 있다. 별을 함께 보던 시간, 세상을 탐험하듯 묻고 대답하던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자라게 했다.
나는 당신에게 세상을 설명하곤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애써 말을 이어갔다.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던 당신이 고마웠다. 나는 그대에게 선생이 되려 했지만, 돌이켜보니 오히려 내가 배웠다. 당신은 내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날, 나는 내가 얼마나 작고 어리석었는지를 알았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내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려운 일들이 찾아온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감사하려고 애쓴다. 원망이 불쑥 올라올 때에도 감사를 떠올리며 눌러 담는다. 그것이 내가 고난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다. 덕분에 나는 감사로 하루하루를 산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아내며 산다. 꼭 큰일이 아니더라도 먼지 같은 행복들을 주워 담으며 산다. 그 먼지 같은 행복이 언젠가 뒤돌아보면 내 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조심스럽게 그 행복들을 주워 담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한다. 내게 가장 따뜻하게 다가왔던 당신이, 그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 통증을 먼저 알아차렸던 당신이 떠오른다. 바람이 웅웅거릴 때, 풀잎이 고개 숙일 때, 그 작은 움직임 속에서도 내 마음의 아픔을 읽어주던 당신. 나는 그 마음이 그립다. 당신은 내 안의 바람까지 읽던 사람이다.
당신은 이제 내 곁에 없고, 또다시 가을이 찾아왔다. 다시 하현달이 뜰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나답게 살고 있다. 감사하며, 기도하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조용히 울며 산다.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도 바람이 불겠지. 하현달도 뜨겠지. 사랑, 그 뜨거운 이름이 우리를 가두지 못한 채 또다시 가을 바람이 분다.
나는 오늘도 그대에게 편지를 쓰지 않는다. 다만 바람에게 부탁한다. 내 안부를 그대의 창가에 살짝 내려놓으라고. 하현달이 걸린 밤이면, 바람이 내 마음을 데리고 그대 곁을 스쳐 지나가리라.
그대는 그저 고요한 미소로, 나를 기억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