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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깨달은 진실

사랑은 결코 나를 흔들지 않는다. 고요속에 놓아둔다

by 마르치아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고요하다.


그 고요 속엔 미련도, 원망도 없다.


다만 오래도록 들었던 파도처럼,


마음 한켠에서 부드럽게 출렁이는 기억만 남는다.


사랑은 떠났지만, 그 침묵은 여전히 나를 품는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온유해진다.


사랑이 남기고 간 자리가 나를 기도하게 한다.


그의 이름이 아니라,


내 안의 평화를 위해서.


이제 나는 안다.


사랑은 끝나도 고요는 남는다는 것을.


그 고요가 바로 사랑의 마지막 얼굴이라는 것을.


#사랑에대해깨달은진실


수세기를 거쳐 인간은 사랑을 말해왔다. 사랑은 신의 언어이자 인간의 갈망이었다. 플라톤은 사랑을 영혼의 기억이라 했고 단테는 그 사랑을 따라 천국의 문턱까지 걸었다. 시인들은 사랑을 불이라 노래했고 성자들은 그 사랑을 은총이라 불렀다. 그러나 오늘의 사랑은 점점 가벼워졌다. 이름은 여전히 사랑이지만 그 속은 공허하다. 우리는 사랑을 경험하기보다 분석하려 들고 사랑을 지키기보다 해석하려 한다.


오십 년 넘게 살면서 나는 이제야 사랑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은 불처럼 타올라 나를 데우다가도 어느 날엔 재로 변해 흩어졌다. 젊은 날의 사랑은 열정이었고 중년의 사랑은 이해의 연습이었으며 이제의 사랑은 놓아주는 평화다. 수많은 사랑의 얼굴이 지나가고 나서야 알게 된다. 사랑은 결국 남겨두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사랑이라 믿으며 상대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내 안에 가두고 나만 바라봐 주길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잃을까 봐, 잊힐까 봐, 내 안의 결핍을 메우려 했던 욕심이었다. 부드럽게 말하고 다정한 얼굴을 지었지만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그를 내 곁에 묶어 두려는 이기심이 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랑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랑은 결국 상대를 내 쪽으로 끌어 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제자리에 놓아 두는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는 사랑이란 미명으로 상대를 묶어 두려 한다. 그러나 사랑은 그를 가두는 일이 아니라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손을 내미는 일이 아니라 손을 펴는 일이다.


그의 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바라봐 주는 일 그것이 진정 어린 사랑이다. 붙잡지 않아도 이어지고 소유하지 않아도 깊어지는 사랑. 그가 멀리 가도 여전히 내 기도 안에 머무는 그 조용한 믿음이 사랑의 마지막 얼굴이다.


사랑이 일렁이다 떠난 자리를 봐도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 그것이 사랑의 성숙이다. 미련이 사라진 자리는 공허가 아니라 고요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랑이란 상대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를 나의 일부로 품는 일임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꾸어 내 안에 머문다.


사랑은 결국 내가 나에게 닿는 일이라는 것을. 그를 향해 내딛은 모든 걸음이 결국 나의 내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를 이해하려 애쓰던 시간은 나를 이해하는 연습이었고 그를 용서하던 순간은 나를 품는 자비였다. 나는 사랑을 통해 나를 배웠고 사랑을 잃으며 나를 되찾았다.


사랑은 그리하여 나로 시작해서 나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타인을 만나고 상처받고 깨닫는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된다. 사랑은 타인을 통해 나를 완성하는 순례였음을. 그가 내 곁을 떠나도 그가 내 안에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를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사랑을 통해 자신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 속에서 기쁨과 슬픔 이별과 그리움은 모두 진리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언젠가 방편이 필요 없는 자리에서 나도 사랑처럼 자유로워지기를. 그때는 사랑이 말이 아니라 빛으로 흐르고 그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완전히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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