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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이가 가르쳐준 진실

상처나고 아무는 동안 나는 사랑을 배웠다

by 마르치아

아홉 살이던 나는 아픈 엄마 곁에서 끓는 물을 올려두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한숨만 내쉬어도 비틀거리던 엄마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작은 움직임에도 위험이 느껴졌고 나는 그저 끓는 물이라도 데워드리면 엄마의 병이 조금은 나아질 것 같아서 어린 마음으로 냄비를 불 위에 올려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솥이 흔들리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내딛었다. 솥이 엄마 쪽으로 쏟아지지 않도록 내 발목을 그 뜨거운 자리로 밀어넣었다. 닿는 순간 발목에서 살이 익어가는 냄새가 공기에서 피어올랐고 통증이 뇌까지 닿았지만 엄마는 울면서 우리 아가 괜찮냐며 손끝을 떨며 내 발목을 감싸주었다. 나는 엄마를 지키겠다고 내민 발과 엄마가 나를 지키겠다고 쥔 손 사이에서 사랑의 첫 번째 모양을 배웠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다치는 것임을 너무 일찍 배워버렸다.





그 상처는 어느 누구도 돌봐줄 여유가 없어서 부풀어 오르고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다시 차오르는 과정을 반복했다.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약을 바를 형편도 되지 않았고 나는 아픈 아이의 발목에서 일어나는 생리를 그대로 견뎌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붉게 짓무르던 살 위에 얇고 투명한 막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딱정이였다. 딱정이는 상처를 숨기기 위한 가면이 아니었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몸이 스스로 지어 올린 작은 성전이었다. 상처는 잊혀지기 위해 덮이는 것이 아니라 아물기 위해 덮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딱정이는 말없이 가르쳐주었다. 억지로 건드리면 피가 도로 흐르고 뜯어내면 새살이 다시 갈라진다는 것을 내 몸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깨달았다. 치유는 밖에서 오지 않고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세월은 흘렀고 나는 몇 번의 뜨거운 사랑을 지나왔다. 사랑은 내 안에 또 다른 화상을 남겼고 사랑의 끝자락마다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 같은 모양의 상처를 남기곤 했다. 뜨거웠던 만큼 상처는 깊었고 상처가 깊은 만큼 치유는 느렸으며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매번 새롭게 살아냈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마음 속 몇 개의 굳은 자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다른 얼굴의 사람들로 인해 남겨졌지만 이상할 만큼 닮아 있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마다 결국 딱정이가 앉아 있었다. 딱정이는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사랑했는지 왜 그렇게 다쳤는지 탓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너는 쓰러진 적은 있어도 끝나버린 적은 없었다고 너는 견뎠고 버텼고 사랑했고 아물어왔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딱정이 아래의 기록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얇고 단단한 그 보호막 안에는 내가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다쳤고 어떻게 다시 살아남았는지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기에 아물 수 있었고 뜨겁게 다쳤기에 뜨겁게 회복되었으며 나는 매번 같은 자리에서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매번 다른 방식으로 다시 일어났다. 딱정이가 올라앉은 자리 아래에는 늘 새살이 자라고 있었고 그 새살은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더 깊고 더 따뜻했다. 나는 상처가 약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강해지는 과정이며 사랑은 나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은 나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확장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워버렸다. 딱정이는 고통의 끝이 아니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나를 되돌려놓는 출발점이었다.





지금 내 피부 위에는 몇 개의 오래된 딱정이가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각기 다른 사랑의 끝에서 남겨진 자리들인데도 모두 같은 다정한 눈빛을 하고 있다. 그 눈빛은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잘 살아왔다고 잘 버텼다고 잘 사랑했다고 잘 아물어왔다고. 나는 그들의 조용한 위로 앞에서 오래 숨겨두었던 숨을 내쉰다. 딱정이들은 나를 평가하지 않고 실패를 들추지 않고 지나간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안아준다. 그 눈빛들 속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상처가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치유는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남은 기록이라는 것을. 딱정이는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작은 문이었고 나를 지키는 경계였으며 나의 역사가 고요히 쌓여 있는 장소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내 삶 전체를 하나의 고백으로 말할 수 있다. 나는 살아남았고 다시 일어났고 나를 잃지 않은 채 여기까지 걸어왔다. 아홉 살의 발목에 남았던 뜨거운 상처는 아직도 내 피부 아래 조용히 남아 있고 그 자리는 내 모든 사랑과 상처과 회복의 역사가 한 지점에 모여 있는 작은 기념비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다. 손끝으로 더듬으면 어린 날의 숨결과 엄마의 떨림과 내가 선택했던 사랑의 본능이 동시에 되살아난다. 그 상처는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았고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는 매번 내가 어떻게 사랑했고 어떻게 다쳤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기억하게 해주는 가장 오래된 증인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처는 다시 올 수도 있고 아픔은 또 찾아올 수도 있지만 나는 이미 그 과정을 견뎌본 사람이고 그 뜨거움을 꿰뚫고 살아남은 사람이고 새살이 돋는 기적을 몸으로 배운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사랑할 것이다. 아플지라도 사랑하고 무너질지라도 사랑하고 다시 일어설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 뜨거운 방식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또 딱정이가 앉는다면 나는 그 아래에서 새살이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것이다. 그 믿음이 내 발목의 상처를 지금까지 지켜왔고 앞으로의 나를 열어갈 것이다.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아물어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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