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아니 처음부터 그런 일은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인간의 오만일지도 모른다.모든 존재는 고유하다.태어나는 순간부터 각자의 기억과 상처와 사랑을 품고 살아간다.같은 하늘을 바라보아도 기억하는 빛깔은 다르고 같은 말을 듣더라도 가슴에 남는 울림은 다르다.
인간은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를 품고 살아간다.그 세계는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내밀하고 고요한 성채이다.우리는 쉽게 말한다.나는 너를 이해한다고.그러나 그 말은 대부분 내가 너를 내 방식대로 해석했다는 고백에 불과하다.진정한 이해란 나의 해석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의 눈으로 너를 읽지 않고 나의 언어로 너를 재단하지 않고 그저 너의 세계 앞에 가만히 멈춰서는 일이다.때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침묵조차 사랑하는 일이다.하이데거는 존재란 이해를 통해 존재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인간의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제한적이다.우리는 끝없이 타자를 오해하고 타자 또한 나를 오해한다.
오해를 운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 그것이 인간이다.그럼에도 우리는 왜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할까.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의 세계를 조심스럽게 두드리려 할까.그것은 인간이 관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비록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비록 침묵 속에 갇힐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곁에 머무르며 살아간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완성의 약속이 아니다.끝없는 실패를 껴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일이다.그 손은 때로 공허를 붙잡고 때로는 거절당하며 때로는 부서질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또 한 번 손을 내민다.그것이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이다.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다.내 생각과 내 고집과 내 판단을 내려놓고 타자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가 너의 아픔을 다 알지 못해도 네가 아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내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이다.네 마음의 모든 골목을 다 알 수 없지만 그 모름 속에서도 나는 멈추지 않고 너를 향해 걸어간다.사람은 모든 것을 이해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음에도 사랑하는 존재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과 용서와 인내의 다른 이름이다.나는 오늘도 조용히 믿는다.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지라도 이해하려는 마음 하나로 우리는 충분히 서로를 살게 할 수 있다는 것을.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신을 이해하려 한다.이 끝내 다 닿지 못할 세계를 조심스럽게 사랑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