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모든 것이 기적이 되는 곳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든 행동이 기적으로 불리는 곳

by The 늦기 전에
"생각해보면 기적은 꽤나 가까이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대단한 것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기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위지안,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중에서 -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이름부터 철인(鐵人)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하는 것일까? 아니면 42.195km를 단숨에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힘들까? 그것도 아니라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것이 더 어려울까? 어떤 것을 생각하든 대부분 인간의 육체적 한계에 도전하는, 일반인은 감히 시도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럼 반대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숨쉬기? 걷기? 잠자기? 밥 먹기? 침 뱉기? 등등 너무 많아 열거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 떠오른다. 요양병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다. 대단하고 힘든 일이란 땀 흘려야 하는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을 의미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마법의 주문


군대를 전역하고도 할머니 병문안은 계속되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병원에 갔다. 가끔 바쁘거나 일이 있는 날에는 2주에 한 번씩이라도 꼭 할머니를 뵈러 갔다. 자주 뵈러 간다고 해서 할머니 상태가 호전되거나, 할머니가 날 기억해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의 죄책감 때문에 빠지지 않고 요양병원에 갔다.

할머니를 만나면 항상 주문을 외듯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백옥자지 누구야?”

“한자로는 어떻게 쓰는데요?”

“흰백(白)자, 구슬옥(玉)자, 아들자(子)자”

“할머니 나는 누구예요?”

“손주 아이가”

“손주 이름은 뭔데요?”

“김갱후이 아니가”


이것만이 할머니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할머니가 날 잊지는 않았는지, 이름을 까먹지는 않았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간혹 가다가 할머니가 대답을 못하시거나, 버벅거리시는 날이면 치매가 더 심해진 줄만 알고, 할머니를 부여잡고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물론 그냥 잠에서 덜 깨서 대답을 못하시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날 역시 눈물을 쏟았다.)


어쨌든 할머니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손을 결박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빈도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것이 좋은 징조인지, 그 반대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할머니가 같은 병실의 환자들이나, 간호사들에게 미움받지는 않을 테니까.



일상이 도전이 되는 곳.


병문안을 갈 때마다 항상 할머니를 모시고 복도를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했다. 할머니가 운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손을 결박했던 경험이 독이 되었던 것 같다. 새끼 코끼리를 말뚝에 묶어놓으면 처음에는 탈출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버둥을 친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불가능함을 깨닫고 나면, 다 성장해서 말뚝 정도는 금세 뽑아버릴 수 있게 되더라도 더 이상 탈출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할머니는 침대를 벗어나는 것을 포기하신 듯 보였다. 이후 결박을 하지 않는 낮시간에도 도무지 침대 밖으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가 방문할 때만이라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걷기 운동을 도왔다. 그때 사람이 두발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할머니는 한 손으로 내 팔을 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벽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내디뎠다. 20분이 걸릴 때도, 30분이 걸릴 때도 있었다. 가끔은 복도에서 할머니가 주저앉는 바람에 할머니를 안아 들고 다시 침대로 옮겨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다리는 점점 약해져 갔다.


매주 요양병원에 가다보니 언젠가부터는 주위를 둘러볼 만큼 여유도 생겼다. 그제서야 주위에 할머니보다 더 건강이 좋지 않은 어르신도 많이 계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할머니는 음식을 삼키지 못해 코에 연결된 호스관을 통해 식사를 공급받고 있었다. 또 다른 어르신은 목 속의 가래나 이물질을 스스로 뱉어내지 못해 목에서 긁는듯한 소리가 났고, 이따금씩 간호사들이 석션이라는 빨아 당기는 기구를 이용해 목 속의 이물질을 제거해 주고 있었다.


걷는 것, 숨 쉬는 것, 밥 먹는 것, 가래를 뱉어내는 것 따위의 일상에서 흔히 하는 행동들이 그렇게 힘들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일상의 모든 활동이 도전이었고, 고통이었다. 아무것도 잡지 않고 당당히 걷는 일, 음식을 씹어 삼키는 일, 심지어 가래 침을 뱉어내는 것 따위의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매일매일 힘겹게 도전하고 있었다.




가장 힘든 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가족의 힘든 도전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할머니가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해서 식사를 하지 못하는 날에는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이라고 생각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또 할머니가 걷기 운동을 하다가 주저앉아 버릴 때면 “할머니 조금만 더 가자~어?할매~” 하며 울먹일 때도 많았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기적은 거창하고 이루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기에 항상 기적은 멀리 있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 보고 겪은 바로는 삶은 매일이 기적이고, 매일이 도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숨 쉬고, 밥 먹고, 가래를 뱉는 일에 힘겹게 도전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아무런 제약 없이 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적이고, 행복이다. 그것을 반드시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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