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기억하는 마지막 날

그 어떤 말로도 용서받지 못할 그날의 기억

by The 늦기 전에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맨 인 블랙]에 보면 기억을 지우는 도구, ‘뉴럴라이저’가 등장한다. 밝은 빛을 내는 그 도구를 이용하면 일정 기간 동안의 기억을 깨끗이 지울 수 있다.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기억일 수도 있고, 어떤 행동으로 인해 망신을 당한 기억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잊고 싶은 기억들은 이따금씩 떠올라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내게도 잊고 싶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고, 후회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비용이 얼마이든 간에 그 시점으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고 싶다. 아니면, 그때의 기억을 깨끗하게 지워버리고만 싶다. 10년 전, 할머니가 기억하는 마지막 날이었던 그날은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나와 할머니가 함께 살게 되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손주와 같이 살면서 건강상태가 호전되었다. 기력과 건강을 회복하셨고, 혼자 외출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도 온전한 상태가 되었다. 치매 진단을 받았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멀쩡했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손자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도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꿈꾸었던 대학생활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할머니의 치매로 인해 미루고 있었던 군 입대도 다시 신청을 했다. 다 잘 풀리고 있었다. 여전히 가진 것은 없었지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이제야 '행복'이라는 것을 찾은 기분이었다.


할머니 상태가 그만큼 멀쩡했다.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 예수님께 손자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드셔서, 밥 먹기 싫다는 손자의 투정에 피자와 치킨 같은 배달음식도 맛있게 드시고는 했다. 간혹 할머니 걸음걸이가 이상해지기는 했다. 그리고 배변활동에 문제가 있으신지 화장실 앞에 변이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할머니랑 대화가 되었으니까.


몹시 추웠던 어느 날.


그러던 어느 날 부산에 한파가 몰아쳤다. 부산에서는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함박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또 한파주의보가 내려 모든 것이 얼어붙은 날이었다. 군 입대를 3개월 앞둔 시점이었고, 예정대로 대학교는 휴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금 춥다는 것만 빼면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외출을 하기 위해 준비해둔 옷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옷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할머니가 빨래로 착각하셨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베란다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빨래는 세탁기에 들어있었다 꽁꽁 언 채로. 아마도 어제 세탁기 배수구가 얼어서 동작을 멈췄는데, 할머니는 빨래를 돌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밤새 그대로 둔 모양이었다. 빨래들은 이미 꽁꽁 얼어 손댈 수 없는 상황이었고, 외출이 급했던 나는 할머니께 짜증을 냈다.


“할매! 이거 빨래를 이대로 놔두면 어떡해요?”

“아참 내 정신 좀 봐라. 빨래 돌려놓고 깜빡했네”

“이거 다 버려야 되잖아요!”


할머니는 당황하시며, 재차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온갖 짜증을 내며, 세탁기를 분해했다.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헤어 드라이기로 언 부분만 녹여주니 금방 세탁기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 투덜거리며 외출을 했다.


밖에서 감정을 좀 추스르고 나니 할머니께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짜증을 낼만한 일도, 할머니 잘못도 아니었다. 그런데 급한 마음에 괜히 할머니께 화풀이를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밖에 있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일찍 가서, 할머니랑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을 좀 풀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 약속을 취소하고 일찍 귀가했다.


악몽 같은 날


집에 들어오니 할머니는 안방에서 코를 고시며 주무시고 계셨다. '다행히 기분이 많이 상하지는 않으셨나 보다' 하는 생각에 안심하며, 조용히 씻고 나왔다. 그리고 할머니를 깨웠다.


“할매 이제 일어나서 저녁 먹어요. 오늘 손자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할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몸을 흔들며 할머니를 깨워보았지만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분명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시는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 아무리 애타게 부르고 몸을 세차게 흔들어도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코고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119구조대에 연락을 했다. 금방 구조대가 왔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들것에 실려나가면서도 할머니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저혈당 쇼크라고 했다. 할머니가 당뇨 때문에 당 수치를 낮추는 약을 먹고 있었는데, 당이 너무 떨어지면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었다. 치료를 했으니 곧 의식을 찾으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침에 내가 화를 내서 충격을 받으신 건 아닌지, 그것 때문에 약 먹을 시간을 착각하신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아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의사의 말처럼 곧 의식을 회복하셨다. 그런데... 계속해서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하시기 시작했다.


“북쪽이 어디고, 머리 쪽, 여가 북쪽 아니가, 여기 귀신 있다. 집에 가자”


할머니의 혼잣말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의사의 회진을 기다렸다.다음 날 아침, 회진을 온 의사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치매가 재발했다고 했다. 과거와는 달리 치매가 심해졌고, 더 이상 좋아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더 이상 다른 환자 분들께 피해를 드릴 수 없기에 일단은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죽도록 되돌리고 싶다.


10년이 지난 일임에도,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주위 사람들은 올 것이 온 것이라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할머니의 치매 증상은 이전부터 조금씩 보였고,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겪게 되었을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한동안 죄책감에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살았다. 누군가 툭 건들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악몽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다. "후회는 언제나 늦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뒤늦은 후회는 마음 깊은곳에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채찍질을 해댄다. ‘내가 화를 내지 않았더라면...’, ‘그 날 외출을 하지 않았더라면...’, ‘할머니가 먹는 약 종류나 복용법을 내가 좀 더 챙겼더라면…’ 무엇 하나 후회되지 않는 것이 없다. 가장 속상한 일은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 속의 내 모습이 그런 못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때의 실수가 이렇게 평생의 후회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 조금만 더 할머니께 신경을 썼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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