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먼저 떠나보낸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슬펐을 그 날의 기억

by The 늦기 전에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 연인 간의 이별에서부터 반려동물의 죽음까지 이별은 언제나 괴롭고 슬프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은 가족과의 이별, 그중에서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님이 쓴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례가 나온다.


“어느 날 아침, 간호사가 아이의 혈압을 재러 병실에 들어섰을 때 보호자인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러나 간호사는 보자마자 아이가 이미 호흡이 멎은 것을 알았다. 아이의 얼굴이 이미 푸른빛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숨이 끊어진 시간은 새벽인 듯싶었다. 그러나 아이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의 사망 사실을 알리면 의료진이 아이의 시신을 데려갈까 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로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 김범석,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중에서-


자식이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정도의 아픔이 어떤 느낌인지는 겪어보지 못했기에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그 감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목격한 적은 있다. 자식을 잃어버린 아픔을.


마지막 불효


특별한 날이었다. 2008년 12월 31일, 한 해가 마무리되는 마지막 날이었다. 세상은 온통 연말연시를 즐기는 축제 분위기였고, 밝은 새해를 맞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대로 가득 찬 날이었다. 당시 나는 다른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고향인 부산에 잘 내려오지 않았는데, 마침 공휴일과 주말이 겹쳐 며칠 연휴를 갖게 되면서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다.


사실 집에는 들어가기 싫었다. 다들 연말이라고 번화가에서 술 마시며 즐기고 있는데, 집에가서 아버지랑 보내야 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이리저리 약속을 잡아보려 전화와 문자를 해보았지만,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당일 약속이 가능한 친구는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손빨래를 하고 계셨다.


“할매 이 시간에 무슨 빨래예요. 아빠는요?”

“쉿, 느그아빠 잔다 지금, 느그아빠 술 먹고 자다가 바지에 실수해가지고 손빨래하고 있다이가”

“아 진짜”

“곯아떨어졌으니까 조용히 드가서 자라”


아버지가 또 할머니 애먹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심했다. 그래도 이미 자고 있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그냥 조용히 아버지가 자고 있는 거실 겸 안방을 지나 내 방으로 향했다. 여닫이식이었던 방문 손잡이를 쥐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싸한 기분이 들었다.


어두운 방에서 주무시고 있는 아버지의 표정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 온화한 표정이었다. 할머니 말씀처럼 그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느낌이 이상했다. 아버지 곁으로 갔다.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아버지 얼굴을 노랗게 떠있었고, 숨을 쉬지 않았다. 아버지 가슴을 내리치며 아버지를 불렀다.


“ 아빠!!!!!!!!!”


그제야 현실을 알아챈 할머니는 울고 있는 내 옆으로 와서 대성통곡을 했다.


“훈아 그만해라 너거 아빠 죽었다..그만해라…”


곧이어 119 구급대가 와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했고, 그렇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불행은 더 큰 불행을 낳는다.


할머니는 아버지 장례 내내 슬픔에 빠져계셨다. 입에도 대지 않던 술도 드시고, 가끔은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기도 했다. 울다 지쳐 잠들기도 했고, 몇 번을 실신하다시피 쓰러지기도 했다. 특히 화장터로 이동을 할 때에는 세상이 떠나가라 통곡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눴다.


주변에서는 할머니와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위로의 말이 크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다만 언제까지 슬픔에 빠져 살 수는 없기에 다시 회사가 있는 지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사촌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 집에 갔더니 집이 엉망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아마 치매인 것 같다고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누나에게 할머니의 병원 동행을 부탁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달리는 차에서 문을 열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할머니를 멀리 둘 수가 없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할머니는 혈관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 아마도 자식을 잃은 슬픔이 큰 충격이 되어 몸을 망가뜨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아들은 치매라는 슬픈 질병만 남긴 채 떠났다.


당시 아버지가 그렇게 먼저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건강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아직 49살에 불과했다. 할머니도, 나도 그 어떤 준비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떠날 줄 알았다면 아버지께 좀 잘해드릴걸 그랬다. 만약 아버지도 그렇게 가실 줄 알았다면 할머니께 진작에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미 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히스이 고타로의 [내일이 내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이라는 책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다. "사는 동안 하지 못한 일은 무엇입니까? 후회로 남는 일은 없습니까? 이대로 생을 끝마친다니 후회되지 않습니까? 단 한 번뿐인 생이 이렇게 끝나다니..., 가슴을 치며 절규하고싶지는 않습니까? 정말, 후회없습니까?" 나중에 먼훗날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면 꼭 묻고 싶다. "정말, 후회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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