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처럼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는 나이 듦에 대하여
내가 죽는 날, 내 장례식에는 몇 명이나 와줄까?
나를 알고, 내가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을 ‘인연’이라고 한다. 단지 어디서 처음 만났냐에 따라 직장에서 시작된 관계는 직장동료, 학교에서 시작된 관계는 친구라 부른다.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한 순간에 인연이 다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그리 가까이 지내지 않았음에도, 환경이 바뀌어도 계속 인연을 쌓아가는 사람도 있다.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 어디서 올지 모르고, 어떻게 끝날지도 모른다. 살면서 이런 인연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시기는 경조사가 생겼을 때가 아닐까 한다.
결혼식과 장례식으로 대표되는 경조사에는 친분 자랑을 하듯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또 많은 이들이 초대에 응한다. 마치 경조사에 와주는 사람의 숫자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는지에 대한 척도가 되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다른 이들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내 경조사에도 많은 이들이 와주길 바랐고, 실제로 아버지 장례식에 와준 많은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그래서 할머니 장례식에도 많은 이들이 와주길 바랐다. 세상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 가는 길을 배웅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요양병원을 다니기 전까지는.
외로운 영혼
요양병원에 자주 가면 익숙한 얼굴도 많이 생긴다. 어떤 할머니는 내가 병문안을 가면 우리 할머니보다도 더 반겨주셨다. 할머니 간식을 좀 넉넉하게 챙겨가서 주위에 반겨주시는 할머니들께 조금씩 나눠드리고는 했는데, "됐다~뭘 우리 것 까지 챙겨주노, 너희 할머니나 더 챙겨드려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연신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셨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옆자리에 계신 한 할머니는 날 엄청 못마땅해하셨다. 갈 때마다 왜 왔냐고 타박했고, 자주 들여다보지도 않으면서 무슨 보여주기 식 효도하냐고 꾸중하셨다. 또 가끔은 욕설도 하셨다. 너무 억울했고, 내 진심이 부정되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 할머니들 계신대서 짜증을 낼 수가 없어서 간호사실을 찾았다.
“저희 할머니 옆에 할머니 뭐예요?? 왜 자꾸 막말을 해요?”
“아 그 할머니도 치매예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말씀을 심하게 하시잖아요. 자리 좀 바꿔주세요.”
“사실 그 할머니 찾아오시는 분이 없어서 샘나서 그러시는 것 같아요. 보호자분 뿐만 아니라 병실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한테 그러네요..”
“아니 가족도 안 와요?”
“자녀가 있긴 한데 통 안 찾아오네요. 정 불편하시면 말씀드려서 자리 바꿔드릴게요.”
“아... 아니에요 일단 알겠습니다.”
누군가 찾아오는 것조차도 샘이 날 정도로 사람이 그리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측은한 마음이 생겼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매주 가면서도 그 할머니께 보호자가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옆자리 할머니 간식도 함께 챙겨가서 조용히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물론 그 할머니는 여전히 나를 못마땅해하셨지만, 이제 기분 나쁜 말을 해도 “아이~또 왜 그래요~” 하면서 장난으로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문디새끼”라고 하시면서 돌아누우셨다. 그 할머니는 얼마 안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 병문안을 다니다 보면 다른 환자분들의 보호자도 자주 만나게 된다. 어떤 할머니에게는 할아버지가 매일 같이 와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해주었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지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할머니에게는 명절이나 어버이날 같은 공휴일에 형제부터 손주까지 대가족이 찾아와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어떤 할머니는 1년이 넘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너무 슬프게도.
다양한 삶
누군가 '노인은 나이를 먹으면 아이가 된다'라고 했다.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요양병원에 있으면 전부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이처럼 감정표현에 솔직하다. 원하는 것은 바로 말하고, 싫은 것은 떼를 쓰며 싫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들의 솔직한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어떤 할머니는 흥이 많았다. 항상 리모컨을 쥐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음악방송을 찾아보았다. 또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이 병실, 저 병실 옮겨 다니며 친분을 쌓았다. 또 다른 할머니는 점잖은 자태로 병실에 앉아 안경을 쓰고 성경책을 읽고는 했다. 그분들의 성함도, 과거의 직업도 모르지만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한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남자 방문객만 보면 호객행위를 하듯이 불러 세웠다. 쑥덕이는 주변의 소리를 들어보니 젊었을 때, 사창가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있고,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과거의 기억이 자꾸만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내 인생 영화
요양병원에서 보여지는 노인들의 삶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 모습에서 그들이 살아온 일생이 비치고 있었다. 또 그들을 찾아오는 방문객을 통해 그 사람의 가정사나, 사람을 대하던 방식까지 알 수 있었다. 조금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이곳에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누가 찾아와 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과연 장례식에 많은 사람들이 와주는 게 크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배우 마이클 프리처드는 "아무리 부자나 유명인, 권력자가 된들, 죽고 나면 당신의 장례식 참석자 수는 날씨에 따라 다를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경조사에 와주는 사람의 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보다는 살아생전, 특히 나이가 들었을 때 나를 찾아오는, 나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아끼는 한두 명의 방문객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조사에 와주는 하객 100명 보다 그 한두 명이 나를 더욱 빛나게 해줄 것이고, 그들이 내 인생이 성공한 삶이었는지 판단하게 해주는 척도가 되어줄 것이다.
아마도 현재 겪고있는 삶의 과정들 역시 내 인생 말미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때의 내 모습에 부끄러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제 3자가 보았을 때, “나 이렇게 잘 살았소. 행복한 인생이었소.”라고 느끼도록 만들고 싶다. 결코 “저렇게는 안 살아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이라도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겠다고, 주변을 조금 더 챙겨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