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의 빛

죽음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건.

by The 늦기 전에

지나가다가 쓰러진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전 교육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나, 군대에 다녀온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119구조대에 구조요청을 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 한다. 골든타임이라고 부르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에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명제는 우리가 굳이 '의사'나 ‘성인 (聖人)’이 아니더라도 이유 불문하고 지켜야 할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사이코패스나 살인마가 아닌 이상, 고통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을 살릴 방법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기꺼이 그것을 실행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행위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는 곳이 있다. 역설적으로 병원, 그중에서도 요양병원이 그렇다.



살릴 권한을 포기한다는 것은


평소와 같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바로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의 간호사 실이었다. 번호를 보자마자 ‘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을 한 가득 장전하고 회사에서 가장 후미진 곳,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동래ㅇㅇ요양병원입니다. 백옥자 님 손주분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무슨 일 있는 건가요..”

“아 아니요. 다름이 아니라 할머님 몇 가지 동의서를 써주셔야 해서요.”

“아?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네네 건강하세요~이번 주에도 혹시 오시나요?”

“네 아마 토요일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오시면 간호사실에 잠시 들러주세요~”


정말 다행히도 걱정했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실컷 흘릴 준비가 되어있던 눈물은 쏙 들어갔고, 혼자 뭘 한 건지 민망함에 괜히 멋쩍어했다. 어찌 되었든 할머니께서 건강하시다는 소식에 마음이 놓였고, 주말이 되어 편한 마음으로 할머니 병문안을 갔다.


먼저 간호사실로 향했다. 도착하니 보호자가 몇 가지 서명을 해야 할 것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다며, 서류 몇 장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첫 번째 장은 독감 예방 접종에 관한 동의서였다. 어르신들이 단체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겨울철 독감과 같은 전염병에 취약하다고 했다. 그래서 예방접종을 맞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다들 고령이시다 보니 종종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예방접종을 하기 전에는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는다고 했다.


조금 겁은 났지만, 거부할 명분도 없었다. 괜히 백신이 겁이 나서 독감이라도 걸리게 되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고민 없이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음 장에 있던 동의서였다. 연명치료 거부에 관한 동의서, 한마디로 심폐소생술 거부 동의서였다.


정식 명칭은 ‘DNR동의서’. DNR은 “Do Not Resuscitate” 즉, 위급상황에서 연명하기 위한 소생술을 실시하지 않겠다는 동의서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어르신들은 심폐소생술을 하게 되면 뼈가 으스러져 장기를 다치게 할 수 있고, 수술이 힘든 고령의 환자들에게는 그런 행위 자체가 생명을 더 위독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치료를 포기하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선뜻 서명을 할 수 없었다. 간호사는 왜 고민을 하는지 이해한다는 눈치였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그 나이 대 어르신들은 다 하는 거고,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경우가 잘 발생하지도 않아요~." 다들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뭐라고 할머니의 살릴 권한을 포기하나 싶어서 찝찝한 마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할머니를 뵈러 가니 비로소 할머니가 예전보다 많이 늙고, 병들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사람은 매일 보면 얼마나 변하는지 모르다가, 오랜만에 만나면 확 변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지난주에도 봤던 할머니였는데, 그때만 해도 이렇게 늙은 줄 몰랐는데, 너무나 야위고 병든 할머니의 모습에 목이 메었다.


요양병원에서의 시간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느리게 간다. 어떤 것도 변하는 것이 없고, '졸업'이나 '퇴원'과 같은 '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종종 사람이 바뀌는 것 말고는 항상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매주 와서 똑같은 질문을 했고, 매주 밝게 인사를 하고 갔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할머니는 어느새 조금씩 병이 깊어지고 있었고, 죽음에 가까워져 있었다.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의 빛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을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어제와 다른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도, 이제는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가지 말라고 애원해보아도 그 걸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이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린다는 사실을. 서서히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5분 대기조’가 된 느낌이었고, 정말 피 말리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어쩌면 요양병원에 있는 할머니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아니 세상 누구라도 속도만 더딜 뿐 죽음을 향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아웅다웅하며 사는 이유는 지금 당장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갑자스러운 사고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보다는 할머니처럼 서서히 생명의 빛이 사그러져 가는 것이 남은 가족에게는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주셨으니까. 항상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을 아끼고, 언제 떠나더라도 후회 없을 만큼 잘해주길 바란다. 어쩌면 그중 누군가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보낼 수도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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