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인가요?”
과거 '버킷리스트'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가리키는 말로, 동명의 제목을 가진 영화로 인해 널리 알려져 유행하였다. 사람들은 각종 SNS에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업로드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이뤄냈고, 또 올해는 몇 가지를 이룰 거라는 식의 다짐을 올리기도 했다. 서점에는 버킷리스트 작성법과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과정을 다루는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당시에는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일시적인 유행이자, 온라인에서 흔히 보이는 ‘보여주기 식 허세’ 일뿐이라고 폄하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바빴다. 거창한 꿈을 가지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무언가 도전하기에 시간도, 돈도 부족했다. 내게 버킷리스트는 ‘있는 사람들’의 ‘있어 보이는 척’에 불과해 보였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는 것.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는 주로 할머니와 단 둘이 식사를 했다. 음식을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흔히 결정장애라 불리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배달 메뉴 선정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래서 항상 할머니께 먼저 여쭈어보았는데, 대화는 늘 비슷하게 흘러갔다.
“할매 오늘 배달시켜먹어요~ 뭐 먹고 싶어요?”
“아무끼나 묵자”
“에이 할머니 먹고 싶은 거 뭐 없어요? 비싸도 괜찮아요.”
“뭘 좀 시키묵으꼬,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아무끼나 묵자.”
할머니는 늘 먹고 싶은 것이 없으니 '아무거나' 먹자고 했다. 손자가 알아서 잘 시켜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할머니는 실제로 먹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물론 가끔은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셨고, 가끔은 피자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가고 나니 오히려 먹고 싶다는 음식이 생겼다. 할머니 입원 당시, 처음에는 병문안을 갈 때 과일이나, 과자 같은 간식을 사들고 갔다. 그런데 주위의 다른 할머니들은 집에서 자녀들이 챙겨 온 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도 식사를 대신할 음식을 가져와서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께 먹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었다.
“할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다음 주에 사 올게요.”
“뭐가 있겠노. 녹두죽 묵고 싶다.”
“녹두죽이 뭐예요? 그거 사 오면 돼요?”
“그래 녹두죽 묵자.”
당시 녹두죽이 뭔지도 몰랐다. 그래서 다음 병문안을 가는 길에 유명 프랜차이즈 죽집에 갔다. 녹두죽의 가격은 비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장 저렴한 제품군에 속했다. 그렇게 좋은 음식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저런 죽이 드시고 싶으신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사드리고 싶은 마음에 가게에서 가장 비싼 전복죽, 그중에서도 ‘특’ 자가 붙은 '특 전복죽'을 사 갔다. 다행히 할머니는 전복죽을 맛있게 드셨다. 그 모습을 보니 할머니께 또 다른 음식도 대접하고 싶었다. 할머니께 다시 물었다.
“할머니 다음 주에는 뭐 드시고 싶으세요?”
“녹두죽 묵고 싶다.”
“아 진짜 드시고 싶은 거구나”
그래서 다음 주에는 할머니가 원하는 녹두죽을 사 갔다. 그런데 오히려 전복죽보다 맛있게 드시지 못했다. 아마 진정으로 먹고 싶었던 음식이 녹두죽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의 어느 순간에 녹두죽과 관련된 일화가 있었던 것 같다. 결국 할머니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듣지 못했다. 평생을 좋아하는 음식 하나 없이 살아온 할머니를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물어보지 않은 것뿐인데
예전에 코미디언 조세호에게는 프로 불참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수 김흥국이 조세호에게 "안재욱 결혼식 때 왜 안 왔어?"라고 물었고, 조세호는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라고 억울해하며 대답한 것이 화제가 되어 유행어가 되었다. 그렇다. 모르는 데 어떻게 가겠는가, 정확히는 불러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겠는가.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가끔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하신 적은 있었지만, 고개만 돌리면 지천이 강과 바다인 부산에 살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외에는 어딘가 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또 할머니를 모시고 외출을 하게 되면 걷는 것에 금세 지쳐하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여행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 가자고 안 하는데, 어떻게 가고 싶다고 하노?"라고 대답하시는 것만 같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일본 문화에 대해 배우는 교양 강의를 들었다. 이를 계기로 언젠가 일본 한 번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 멀지도 않고,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할머니께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했다.
“할매 내 일본 한 번 갔다 올게요”
잘 다녀오라고 하거나, 멀리 가는 손자를 걱정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내도 같이 가자”
진심이냐고 묻자. 진짜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제야 알았다. 할머니는 여행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 어디 가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그 누구도 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도 할머니의 건강상태는 멀리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사실 나도 여행을 갈 만큼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에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더 늦기 전에
할머니는 딱히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제대로 말해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원래 그런 사람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어디 가고 싶은지, 진정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모시고 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마음만 먹었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 여행을 못 간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자 책장에 꽂혀있는 책 속 한 구절이 생각났다. 위지안의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라는 책에는 "여행을 떠나기에 적합한 시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저자 위지안은 말기암에 걸려 꼼짝달싹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서야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기에 환경이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는 있다. 지금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은 꿈도 못꾸는 상황이다. 하지만 계획은 세울 수 있다.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뒤늦게 무언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생겼을 때에는 이미 이룰 수 없을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시고 나서야 버킷리스트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버킷리스트는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정말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말 그대로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의 목록이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각하고 작성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여행을 떠나기에 적합한 시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