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들어서, 귀담아듣지못했던 말.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일까?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공부 열심히 해라’와 '밥 잘 챙겨 먹어라'가 아닐까 한다.
“자고로 인생엔 중요한 세 가지 마음이 있지... 초심, 중심, 밥심!”
최근에 방영된 한 간편식 CF에 등장한 문구이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은 ‘밥’을 중요시 여긴다. 매일 만나는 이에게는 밥을 먹었는지로 안부를 묻고, 헤어질 때는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는 인사로 만남을 마무리한다. 밥이 정말 중요하긴 한 모양이다.
공부는 또 어떤가?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생활비를 쪼개어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자녀의 성적을 위해서라면 학군이 좋은 지역으로의 이사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잊힐만하면 ‘스카이캐슬’과 같이 자녀의 공부에 목숨을 거는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가 등장한다. 그만큼 ‘공부’와 ‘밥’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빠질 수 없는 주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밥 잘 챙겨 먹어라.
내 할머니도 언제나 손주 밥 걱정을 하셨다. 만나면 늘 끼니를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물으셨다. 할머니와 따로 살던 시절에, 가끔 인사를 드리러 가면 손주의 볼록 나온 뱃살에도 왜 이렇게 말랐냐며 타박을 했다. 그리고는 진수성찬을 차려주셨다. 할머니 눈에는 아무리 뚱뚱한 손자라도 그저 굶고 다니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삐쩍 마른 모습으로 보였나 보다.
그리고 할머니는 밥을 남기지 말라는 말도 자주 하셨다. 음식을 남기면 나중에 죄받는다나... 그래서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밥을 남길 줄을 모른다. 밥그릇에 아무리 많은 밥이 담겨있어도 다 먹어야지만 식사를 마친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이 되어서 그런지 음식을 남길 때 생기는 찝찝함이 여전히 너무 싫다. 지금 내가 뚱뚱한 체형을 갖게 된 것은 할머니의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할머니가 왜 이렇게 밥에 집착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단순히 할머니 어릴 때 배고픈 시절의 기억이 나에게 투영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커서 생각해보니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의 속뜻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항상 건강하라는, 손자를 걱정하는 진심 어린 마음을 한 문장에 담아 주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 열심히 해라.
할머니는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물론이고,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서른이 다 된 손주에게도 항상 공부 잘하라고 당부하셨다. 이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했다. 할머니 눈에는 아버지가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한 직장에서 진득하게 다니지 못하시는 이유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자나 깨나 “공부 잘해서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해주시고는 했다. 물론 남들처럼 '1등을 해라', '100점 받아와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할머니 저 이번 시험 잘 쳤어요~”하면 그렇냐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셨고, “할머니 이번 시험은 망했어요”하면 다음에 잘 치면 된다고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 주셨다.
할머니는 진심으로 공부만 잘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할머니께 꿈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잘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언제나 내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손주가 남들처럼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주는 응원과 같은 것이었다.
늘 하는 대화가 진심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2년여 전부터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셨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기력이 쇠해,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도 힘들어하셨기 때문이다. 큰 소리로 할머니를 불러야만 잠깐씩 눈을 뜰 수 있었고, 그마저도 금방 감아버리기 일쑤였다.
말씀을 하실 수는 있었지만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였다. 이 때도 무언가 문장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그저 몇 가지 단어를 나열하는 것에 불과했다.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할 수 있었고, 일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다.
마음정리는 조금씩 진행되었지만, 도저히 이대로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다면 죄책감의 무게에 눌려 제대로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제 용서했다’ 또는 ‘마음 편히 잘 살아라’와 같은 말을 꼭 듣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 그래서 힘들어하는 할머니의 귀에 대고 물었다.
“할매 손주한테 꼭 하고 싶은 말 없어요? 어떻게 살아라, 잘 살아라 이런 거요”
힘겹게 입을 뗀 할머니의 대답을 듣는 순간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내 마음 하나 편하고자 그런 질문을 한 자신이 한심해서 용서할 수가 없었다.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는데, 오히려 더욱더 쌓여만 갔다. 할머니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순간까지도 이 못난 손자 걱정뿐이었다. 늘 하던 할머니의 인사가 곧 진심이었고, 그 하나하나가 손주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늘 들어왔기에, 귀담아 듣지 못했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10년 전에는, 아니 적어도 1년 전에는 깨달았어야 했다. 할머니의 크나큰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