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삶을 분명하게 살기 위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너무 무겁지 않냐고.
그런데 나에게 죽음은
그런 우울한 주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가장 또렷하게 만드는 기준에 가깝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음을 여러 번 가까이에서 마주했다.
고등학생 때,
놀이공원에서 바로 옆 놀이기구가 추락해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고를 목격했고,
졸업식 전날에는
친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 이후에도
군 복무 중 함께 생활하던 선임의 암 투병과 죽음,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며
수많은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열심히 살아왔는데,
정작 잘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
돈을 벌기 위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는 느낌.
죽음을 떠올리면
그동안 중요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이상하리만큼 작아 보였다.
반대로,
평소에는 당연하게 넘겼던 것들이
갑자기 커다랗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죽음을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더욱 분명하게 살기 위해
죽음을 기준으로 삼아가기로 했다.
만약 시간이 많지 않다면
지금 이 선택을 계속 가져갈 수 있을까.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지금의 관계를 후회하지 않을까.
이 질문들은
삶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삶을 정리해 주었다.
이곳에서는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후회에 대해,
미뤄둔 선택에 대해,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질문이 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지금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여기에서.
- The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