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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Aug 10. 2023

누워있는 여자

5. 그날의 기억

태풍 카눈이 북상하니 안전에 주의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연신 휴대전화로 날아온다. 창밖을 보니 벚나무 가지들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매서운 비바람도 한몫하는 시간이다. 

태풍이란 예고치 않게 우리 일상을 뒤집어 놓고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태풍이 지나가는 자리가 무사고로 아무 탈 없는 오늘이 되길 바라본다.      


나 또한 오늘도 무탈한 시간이 감사하다. 


나의 일상도 그날 오전 해변에서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지만, 다시 찾은 건강과 온전한 오늘을 맞이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지금 와서 사고가 난 그날 오전을 돌이켜보면 모든 게 꿈만 같기에 아직도 실감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매사에 신중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무언가에 의해서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충격이 가해진다면 나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송정에서의 이박 삼일 일정을 떠올려 보면 각기 다른 책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기분이 들곤 한다. 바다의 물결이 그날의 일기에 따라 가볍게 짙게 때로는 부드럽게 거칠게 달라지듯이 말이다.     

사고가 나기 전날 그날의 바다는 고요하고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했다. 눈으로 밀려오는 송정 바다는 햇빛 찬란한 물결과 함께 마음에 조용히 파동을 일으켰다. 거기에 여동생들의 웃음을 떠올리면 난 언제나 호탕한 그녀들이 참 좋다. 그래서 그녀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한결같이 그렇게 가벼웠는지도 모르겠다.      


하늘은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음식점은 송정 바다를 끼고 거의 끝자락에 붙어있는 이 층이었다. 

우리는 어두워진 그림자를 밟으며 서둘러 음식점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이 층을 눌렀다. 

    

“얘들이 먼저 왔을까?”

“글쎄, 모르겠네. 우리 어린 왕자 빨리 올라가자.”     

     

실내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여유로운 뭇사람들의 웃음과 말소리가 섞여 흥을 돋우는 곳이었다. 아직 낯익은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쪽으로 들어가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송정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음식점 분위기는 손님들의 입맛에도 행복의 감각을 올려주고 있었다.      


“분위기가 낭만이 있네.”     


우리가 도착한 뒤 곧이어 여동생 일행도 들어왔다. 매번 전화로 수다를 떨면서도 재차 안부를 물으며 음식을 주문하기 바빴다. 잠시 뒤 주문한 음식에는 서비스로 랍스터까지 들어있어서 다들 대만족이라며 좋아라 했다.

다만  난 비건주의는 아니지만, 몸을 챙겨야 하는 여건이라 내 형편에 맞게 된장찌개와 밥을 시켰다. 다들 내 상황을 잘 알기에 언제나 무심히 넘겨준다. 그래서 내게도 자매들과의 만남은 항상 편한 자리이기도 하다.

불판에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자 어린 왕자의 후각을 자극했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포크부터 들고 고기가 구워지길 기다렸다. 넷째 여동생은 그런 어린 왕자를 마주 보고는 씽긋 웃더니 선물이라며 공룡 레고 장난감을 언니에게 건넸다.    

  

“자! 어린 왕자 선물,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그 마음을 알았는지 어린 왕자도 싱글벙글 배고픔도 잠시 잊은 채 장난감을 싸고 있던 종이와 비닐을 듣고 레고 장난감을 만지작거렸다. 공룡을 워낙 좋아해서 인지 새로운 공룡 레고에도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언니가 입으로 가져다주는 작은 고기조각을 오물거리며 공룡 레고 장난감을 의자 뒤쪽에 일렬로 쭉 나열하며 놀았다. 

여동생 네 부부와 조카 그리고 막내 여동생까지 못처럼 모인 자리라서 그런지 시끌벅적한 웃음이 오고 가며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이십 대 중반인 딸과 고등학생인 조카는 자주 만나지 못하는 관계지만 불편하지 않을 만큼 허물없이 가깝다. 그래서인지 수다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불판의 고기도 모두의 수다만큼 풍요로웠다. 동생들을 챙기는 언니의 인심이 언제나같이 그날도 넉넉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여행의 한 페이지를 넘기며 시간은 그렇게 기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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