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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Aug 08. 2023

누워있는 여자

4. 송정 바다

드디어 고속열차가 부산역에 도착하고 우리 일행은 역내에서 해물 순두부찌개로 식사를 하며 여행의 묘미를 즐기려 하였다. 어린 왕자도 떡하니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빙그레 웃으며 자기 몫을 챙기니, 그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내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엔.

남쪽 날씨는 역시 지리적으로 서울보다 한결 푸근하니 창 너머 햇살도 부드럽게 밀려왔다. 부산은 나의 고향이지만 자주 다녀가질 못한 탓인지, 이제는 눈길 닿는 곳마다 내게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곳이 되었다. 

많은 가을 인파로 북적이는 부산역을 뒤로하고, 짐을 트렁크에 구겨 넣듯 집어넣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는 빠르게 광안대교를 지나 우리의 숙소가 있는 송정역을 향해 달렸다. 

택시가 속도를 내며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색을 달리하는 바다를 보며 감성에 젖다 보니 예약한 숙소에도 금세 도착했다. 일 층에는 주인 없는 텅 빈 작업실에 작은 소형 그림들이 멋을 내며 뽐내고 있는 게 주인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림을 구경하다 전화로 여주인과 인사를 건네고는 비밀번호를 전달받아 예약해 놓은 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니 쾌적하니 깨끗하고 정갈하여 주인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곳이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언니 역시 흡족해하니 예약한 당사자로서 나 또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에 있어서 숙소마저 깨끗하면 기분도 덩달아 한층 업이 되는 건 사실이니까. 

펜션은 여덟 명이란 수에 비해 화장실이 다소 좁다는 걸 빼면 모든 게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통창 앞으로 송정역이라 적혀있는 옛 기찻길도 눈에 띄었는데, 실제로 해변열차가 운행 중이라 열차를 타고 추억을 즐기는 여행객과 사진을 남기려고 포즈를 취하는 남녀노소 그리고 역 주변을 거니는 연인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했다. 기찻길이 신기한지 어린 왕자도 옆에서 창밖을 구경하며 좋아라 하는 모습이 난 마냥 귀엽기만 했다. 

우리는 어린 왕자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해변으로 나갔다. 그런데 해변으로 가는 길 저 건너편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와! 아무리 날씨가 포근하다고는 하나 십일월도 중반을 넘겼는데, 젊음이 좋긴 좋구나!”


내 환호 섞인 말투에 잠시 멈췄던 언니는 다시 어린 왕자를 태운 유모차를 끌며 부러움이 담긴 눈길을 거두었다. 옆에서 걷던 딸도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신기하다며 바다로 시선을 주었다가 나이 든 엄마와 이모를 따라 카페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카페에서 주문한 각자의 음료를 들고 미리 예약해 둔 음식점으로 동생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해변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왠지 고즈넉한 느낌마저 드는 곳, 아직 개발이 덜 된 곳이라 주변의 환경이 송정의 멋을 더해주고 있었다. 화려하거나 정신없지 않아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르지만 난 송정 바다와 그곳을 둘러싼 정경 그리고 주변의 환경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너무 과하지 않은 자연을 담은 그곳이 특색 있고 좋았다. 

무엇보다 송정 바다만이 품고 있는 색을 맛볼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다. 난 음식점으로 가는 내내 송정의 맑은 바다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맑은 음률로 다가오는 시인의 노래처럼 내 마음도 그곳으로 빨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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