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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Aug 15. 2023

누워있는 여자

6. 순간의 실수

이른 아침 눈을 뜬 네 자매는 어린 왕자를 데리고 해변으로 나갔다. 일렁이는 물결 위로 햇빛을 조각조각 흩뿌려 놓은 것처럼 눈부신 빛줄기가 영롱하게 우릴 반겼으며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도 푸근하니 살갗에 닿는 느낌 또한 좋았다. 어린 왕자를 태운 유모차도 우리의 가벼운 걸음만큼이나 경쾌하고 가벼웠다. 


해변으로 산책 나온 사람들 그리고 맑은 햇살이 눈부시게 뿌려지는 바다의 이미지는 한데 섞여 한 폭의 명화를 연상케 했다. 맑은 영혼이 숨 쉬는 느낌, 그런 순간의 빛깔이었다.    

 

우리도 눈부신 명화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막내와 언니의 여유로운 수다를 뒤로 하고 어린 왕자와 해변으로 내려간 넷째와 난 모래 위에 다양한 동물 그림을 그리며 어린 감성을 자극해 주었다. 난 어린 왕자가 좋아하는 공룡을 다채롭게 모래 위로 펼쳐 놓았다. 그러면 천진난만 어린 왕자의 웃음이 까르륵 피어났다. 어린아이의 웃음에는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순수함이 가득했다. 어린 왕자도 손에 모래를 묻혀가며 모래 위에 자신의 그림 놀이를 했는데 모래가 묻은 손을 입과 눈으로 갖다 대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난 들고 있던 종이컵을 들고 젖은 모래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바닷물을 담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게 그리 마음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쓸려나갔던 파도가 순간 밀려오면 신발이 젖을세라 급하게 피하고 다시 하기를 반복하다 그만 뒤로 넘어졌다. 운동신경이 빠르다고 자부하던 난 지금도 그 순간의 느낌을 생각하면 아찔한 현기증이 스멀스멀 새어 나온다. 

아무리 몸을 지탱하려고 해도 젖은 모래에 신발 뒤끝이 턱턱 걸리며 그대로 뒤로 넘어져버렸다. 나를 지켜보던 넷째는 가볍게 일어날 줄 알았던 나를 보고 급하게 달려왔다. 좀 더 멀리서 지켜보던 언니와 막내도 그랬다.     


가볍게 툴툴 털며 자리에서 가볍게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넘어진 그 순간 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찰나지만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순간이었다. 숨을 쉴 수도 없었고 까만 천둥이 치며 번개 기둥이 척추를 내리꽂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언니와 막내도 달려오고 넷째도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다들 뭐라 말들을 하는지 그 순간에는 흐린 시각만큼 청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했다. 

난 잠시 그대로 있어야 했다. 갑자기 입이 바짝 마르고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땀이 쉴 새 없이 계속 뺨으로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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