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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Aug 17. 2023

누워있는 여자

7. 상념

숙소로 들어서며 걱정할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그러나 실내로 들어서는 나의 안색을 보며 딸아이는 대뜸 무슨 일이냐고부터 물어왔다. 그런 딸을 보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고 모래사장에서 넘어졌는데 괜찮다는 말로 얼버무리며 대충 둘러댔다.      


“엄마! 정말 괜찮아? 얼굴이 안 좋아 보여.”     


평소에는 친구 같은 딸이지만 매사에 속이 깊은 아이라 걱정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속상하기도 했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으로 사로잡혔다. 뒤따라 들어온 언니와 여동생들도 나의 상태를 살피느라 표정들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숙소에 남아있던 넷째 여동생의 남편인 제부도 걱정스럽게 물어왔고 난 애써 괜찮다고 해야 했다.      


“설마 큰일이야 있겠어?”     


넷째의 말처럼 나를 포함한 일행 모두 내 몸 어딘가에 골절을 입었다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젖은 상태의 모래라지만 그래도 모래 위에서 넘어져서 골절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말이 오고 가는 가운데 난 얼음을 갖다 대고는 잠시 누웠다. 하지만 시간이 제법 지나도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예전 아이들이 어릴 적이지만 음식점에서 식사를 끝내고 나오다가 가파른 계단에서 미끄러져 몇 칸을 미끄럼틀 타듯이 쿵쿵 내려가며 엉덩방아를 찧은 적이 있다. 그때 농구선수였던 남편의 지인이 일러준 상식이 있었는데 타박상은 이십사 시간 이내로 얼음찜질하면 통증이 현저히 가라앉는다는 거였다. 난 그분의 말대로 몇십 분을 얼음찜질만 했고, 그 덕분에 병원을 가지 않고도 통증이 많이 완화되었다. 나에겐 매우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기에 얼음찜질 효과를 본 그 이후로 가끔 하는 응급처치였다. 하지만 이번엔 얼음찜질 또한 전혀 소용이 없었다. 진이 빠진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난 그렇게 누워서 깨닫는 중이었다.     


난 점점 이상한 기분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살면서 그런 통증을 느껴보질 않았으니까. 오랜만에 다 같이 함께한 여행을 나로 인해 망쳐버리다니 마음이 여러 가지로 어지럽고 한편으론 혼란스러웠다. 말 그대로 찹찹한 기분만 감돌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상념에 잠겨 있던 난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니와 넷째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조카와 딸은 심심해하는 어린 왕자를 챙기느라 바빴으며 막내는 걱정스러운지 괜히 나의 주변을 서성였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별일 있겠냐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잠시 뒤 돌아온 언니 손에는 흰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언니는 서둘러 식탁 위에 그것을 풀어놓았고 숙소 안에는 진한 미역국 냄새가 진동했다.      


“근처에 전복미역국 맛집이 있어서 사와 봤어. 오전인데 사람들로 벌써 북적이더라니까. 일어나서 먹어 봐.”     

담담한 어조로 내게 말을 던졌지만, 언니의 감정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 이 무슨 날벼락에 주변 사람들까지......,’     


누웠다 일어나는 동작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고통이 동반되었다.     


‘휴!’     


긴 한숨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지만, 그냥 그대로 누워있을 순 없었다. 나를 보는 시선이 모두 몇인가! 아픈 내색 없이 의연한 척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입에선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건 너무 큰 오만과 착각이었다.     


난 억지로 미역국을 한입 뜨며 다들 식사하고 오라고 떠밀 듯이 내보냈다. 혼자 남은 숙소는 매우 조용했다. 미역국 넘기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다니 나의 청각이 그토록 예민하게 작동했던가? 마른입에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던 미역국이 부드럽게 목구멍을 통과했다. 타들어 가던 마른 입안이 조금은 촉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미역국의 힘인지 난 조심스럽게 일어나 먹은 그릇을 설거질 해두고 식탁에 꼿꼿이 앉아 밖을 바라보았다.     


“오지랖을 덜 부렸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질 않았을 것 같은데...”     


난 혼잣말하며 그대로 앉아있었다. 


얼마 뒤 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막내가 서둘러 신발을 벗으며 병원부터 가보자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나의 팔을 잡았다. 

맞다. 내 몸은 정말 정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은 토요일, 병원도 거의 다 문 닫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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