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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원 Oct 24. 2021

서울

아홉 번째 다시씀, 쏜애플 '서울'


  서울은 오래된 난치병 같은 도시였다. 나는 그 병을 이루는 하나의 세포밖에 되지 못해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의 혈관을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만이 나의 일과였다.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 했던 시인도 있었는데 나는 섬도 바다도 없어서 타인의 섬조차 궁금하지 않은, 고립의 난치병을 앓는 시간이 나에게는 백야()같이 길어졌다. 모순적이게도 내가 앓는 서울의 병동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이 퍽 서글퍼 이 도시에 영영 갇혀버린 것만 같았다. 무수한 고립들이 결합한 도시. 나는 서울을 이렇게 진단했다.


  내가 사는 신길동의 집은 지대가 높았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도달하는 길이 꽤 멀어서 매일매일이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산에는 여러 등산객들이 있었는데 삶의 염세를 지독히 앓은 후에는 그들이 무표정의 괴물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게 정리를 하다 담배는 멀리서 피라며 갑자기 욕지거리를 던지는 피부가 거뭇한 중년의 남성, 그 맞은편에서 아랑곳 않고 담배를 물고 있는 후줄근한 차림의 젊은 여성,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급하게 가고 있는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무표정의 여자와 그 뒤를 따르는 모자를 푹 눌러쓴 뚱뚱한 남자. 이 중턱에서 펼쳐진 장면들이 흥미롭긴 했지만 깊이 알고 싶지도 애써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산을 오르다 흘겨본 개성이 죽은 숲의 일각처럼 내게는 별 의미가 없는 통로일 뿐이었다. 


  요즘은 집으로 돌아와 눈을 감지 않고 침대에 누워 과거의 편린들이 사는 천장을 본다.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라던데 나는 과거의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이불을 끌어올렸다. 치열하게 살아보자는 그럴싸한 명분은 불타 없어진 지 이미 오래고 처음 상경하여 꿈꿨던 사람 냄새 가득한 인생은 비릿하기만 하다. 가끔씩 내 천장은 발 밑에 있어서 나는 내가 사랑한 것들을 밟고 지나가야만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진심을 다했던 관계와 사랑했던 열정과 관심 따위는 내 발아래에 살고 나는 날개도 없이 하늘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서울을 앓고 있다. 서울은 가랑비 같아서 아픔이나 괴로움을 느끼지도 못하게 조금씩 나를 적셨고 어느 순간 나는 물속에 빠진 숨처럼 서서히 익사해가고 있음을 알았다. 결국 나는 발버둥 한번 쳐볼 생각도 하지 않고 누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며 아가미를 만들었고 그 형태는 종종 혐오스러웠다. 


  그렇게 잠이 들어 깬 아침에는 장대비가 무수하게 쏟아졌다. 내가 사는 집은 지대가 높아 침수될 걱정은 없었지만 아래는 꽤 물이 잠겼겠다 싶어 잘 꺼내지 않던 레인부츠를 꺼냈다. 사람도 올라오기 힘든 고지대의 동네에 아침부터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렸다. 앰뷸런스 들것에 머리 끝까지 흰 천을 덮은 누군가가 오르고 포털사이트 뉴스엔 오늘 새벽 신길동 주택가에서 서울병을 치료하고 떠난 누군가의 이야기가 보도된다. 지저분한 물이 부츠를 더럽힌다. 오늘 회색의 도시는 꽤 오래 축축하고 내 병은 나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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