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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동원 Oct 23. 2021

Plastic

여덟 번째 다시씀, 정준일 'Plastic'


  아이의 삶은 자주 매캐해서 종일 매운 눈물로 얼룩이 졌다. 


  세상에 나서 고작 몇 번의 봄을 본 게 전부인데 아이는 그럼에도 한철의 봄 꽃을 좋아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흐드러지는 벚꽃 나무를 올려다본 적도, 아빠의 무등을 타고 떨어지는 꽃잎 손에 쥐며 웃음 피운 적도 없지만 아이는 꽃이 가장 좋다 했다. 찰나같이 눈부시게 피어 처절하게 지고 마는 꽃이 자신을 닮아 사랑했었다 말해도 우리는 아이에게 건넬만한 별다른 면목이 없다.


  아이는 종종 섬처럼 가만히 있었고 섬에는 사람이 없었다. 생명이 나고 지는 게 기적 같은 일이라는 어른들의 언어는 아이에게 염치없는 구언, 탄생과 함께 구형된 죗값 같은 삶을 사는 아이는 그래서인지 되레 웃음의 역치가 낮았다. 아이는 죽기 하루 전에도 가만히 웃었다. 어린이집에서도 볕이 가장 가난한 구석자리에 별자리처럼 앉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에게 환히 웃음 짓는 걸로 아이는 유언을 대신했다. 어린 나무로 짜인 관, 햅꽃같은 영정 앞에 어른들은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고 어디선가 바싹 마른 죄스러움이 타올라 매워서 탁한 공기가 눈을 찔러대는 것만 같았다.


  "저희가 국화를 놓을 자격이나 있을까요"

  "죄책감은 가소성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멋대로거든. 꽃은 안 그래. 미안해서 주는 게 아니야. 예뻐서 주는 거지."


  아이가 묻힌 땅에는 소복한 눈이 쌓여있었다. 밟을 때마다 들리는 음들이 마치 아이의 목소리처럼 느껴져 남자는 발걸음도 조심히 떼어내야 했다. 사람도 죄책감처럼 가소성이 없었다. 아이는 죽었고 어른들은 찌그러진 채로 남았다. 알량한 죄책감에서는 늘 썩은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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