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우리 같이 살아요
J는 아침 5시 40분 기상
눈을 뜬다. 감는다. 다시 뜬다.
베개에 머리를 떼자마자 침대를 뛰쳐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잠들 것이다. 찬물에 손을 씻고 냉장고 문을 연다. 토마토, 셀러리, 달걀, 올리브, 양파, 발사믹 식초, 올리브유, 치즈 한 장 오늘은 샌드위치 만들기로 정한다. 아침 메뉴는 그때그때 있는 것들의 조합이다. 나의 뇌는 아직 잠자고 있어서 솔직히 손이 만드는 거지 머리 쓰는 건 없다. 커피를 갈고 물을 끓이고.
“커피 필터가 어디 있지?”
토스터기에 냉동고에 있던 식빵을 넣고, 달걀을 반숙기에 넣고, 나머지는 손질이 다 되어있으니 그냥 자르면 된다. 그래도 나온 숟가락만 해도 몇 개이니, 짧은 시간에 하려니 분주하다. 재료 준비 완료 후 커피를 내린다. 뭐라 뭐라 중얼거리면서 하루가 시작한다.
H가 일어나자마자 뭘 하는지는 잘 모른다. 한 번도 나는 그때 의식이 있던 적은 없다. H는 물을 한잔 따뜻하게 데워 마시고, 백팔 배를 한다고 한다. 일어나기가 너무 힘든 날은 거실에 누었다가 하기도 하고 거기서 잠시 잠들기도 하고 이것저것 운동을 한다. 조깅도 할 수 없고 철봉에 매달릴 수도 없고 하니 스스로가 만든 방법으로 몸 관리를 한다. 몸 관리가 돼야 오늘 하루 안마받는 할머니들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 한다. H는 약간 지나친 건강염려증이 있다고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자기를 관리함에 철저함은 배울 점이다.
오늘 아침, 우리의 만남은 샌드위치와 커피로 시작한다. 한 20분 정도로 아침 식사 시간을 가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어제 다 못한 이야기, 오늘 무얼 할지 이야기, 어떨 때는 괜한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양치를 엉망진창으로 할 때가 있다. 철저한 H는 요즘 나를 닮아간다. 출근이 7시인데 10분 전 양치질은 예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살다 보니 조금씩 안 좋은 습관들도 닮고, 좋은 습관들도 닮고.
J는 H를 배웅하러 나가지 않는다. 마중도 잘 안 한다. 처음에는 좀 했지만, H가 괜찮다고 한다. 그럼 안 해도 되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눈먼 남편을 혼자 내보내냐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렇게 같이 살면서 알고 있다. 같이 살뿐 각자의 삶에 오롯이 서 있다는 걸. ‘굳이 필요 없는 도움은 사양이다’가 H의 말이다. 나도 그것에 동의한다. 서로 간의 관계도 미니멀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을 서로 의지하고 각자 잘 사는 거다.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걷는 걸 우리는 알고 있고 그런 우리 사이에는 커다란 바다가 있다는 것도 허락한다. 그 바다는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아주 멀기도 하다. 그래서 그 바다라는 존재를 늘 존중한다. 나의 아침, 당신을 위한 나의 역할은 아침 준비와 간단한 옷 준비 정도이다.
그가 출근하고 난 오롯이 나의 세계로 돌아온다. 역할이 바뀌고 나만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접어들 때쯤 갖은 잎들을 떨구듯이 겨울의 쉼은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에든 필요하다.
차를 한 잔 마시자.
인터뷰
J: 왜 아침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달라고 하시는 거죠?
H: 처음엔 아내가 샌드위치 준비하는 게 제일 쉽다고 해서 아내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샌드위치가 맛있어진 거죠. 거기에다 갓 내린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죠. 사실 J를 만나기 전에는 아침에 샌드위치나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 그게 아니라 전 그 쓴 커피를 마시는 이유를 몰랐었죠. 그 맛없는 걸 왜 먹느냐 생각했죠.
J: 그런데 내가 요즘 바쁘고 일어나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샌드위치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이유는 뭐죠? 게다가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재료를 자꾸 업데이트해 달라며 요구사항을 늘려가는 이유는요? 제가 샌드위치를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알고 계시나요?
H: 이제는 사실 샌드위치가 맛있거든요. 얼마큼 시간이 걸리는지 전 몰라요. 샌드위치 만들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몰라요. 그래도 전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시고 싶어요.
J: 같이 아침 준비를 하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H: 물론 있죠! 그런데 뭔가 어디 있는지 아직 잘 몰라요. 외운 대로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없는 것들이 많아요. 커피 정도는 제가 내릴 수 있을 거예요. 대신 원두, 필터, 드리퍼 등이 어디 있는지 명확히 알아야 아내가 일어나기 전 할 수 있죠. 그렇지 않으면 하기가 좀…. 그리 빠르지 않지만 느려도 대충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