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걸어요

-카일라스 트레킹

by 박정원



둘은 하나처럼 움직여야 한다.

같이 걸어야 하고

보폭을 맞추어야 하고

서로의 체력을 공유하고

협력하고

기다리고

배려하고

기도하고

함께 먹고

함께 쉬고

함께 바라보고



2019년 7월 티베트 카일라스 트레킹에 도전한다. 우리는 카일라스 트레킹을 준비하기 위해 ‘다르첸’이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여기는 카일라스 트래킹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베이스캠프다. 바로 어제까지 5일을 쉼 없이 달려온 터라 피로감이 가득하다. 그런데 여기 날씨가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초겨울 날씨고 내복도 준비하지 못한 터라 잠도 오들오들 떨며 자서 그런지 몸이 막대기처럼 뻣뻣하다. 아침부터 어두운 날씨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일단 숙소에서 채비를 대충 하고 우비를 다시 사야 하는 상황이라 우왕좌왕하며 다르첸을 돌아다닌다. 다행히 우비는 구했지만 너무 춥다.


트레킹 시작이다. 오늘은 아웃 꼬라를 돈다. ‘꼬라’는 전문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신성한 카일라스 산 주위를 순례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트레킹 코스다. 티베트인들은 이 신성한 산의 둘레만 돌아도 맘과 몸이 모두 정화된다고 생각한다. 신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러나 그 길이 고산을 살아보지 않은 우리에게는 쉬운 길이 아니다.

‘우리가 과연 그 입구까지라도 갈 수 있을까?’

우리도 신의 도움을 청할 뿐이다.

‘신을 만나게 하소서!’



카일라스 트레킹은 길도 만만치 않고 산소도 부족한데 8시간을 걷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도 의문이다. 특히나 일행들과 걷는 속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일찌감치 우리는 뒤로 빠져서 걷는다. 둘이 늘 걷듯이 손을 잡고 가거나, 좁은 길은 내가 먼저 앞장서고 H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따라온다. 무엇을 위해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걷기만 한다. 절경을 즐길 수도 없이 그냥 그 에너지에 끌려간 게 맞으리라. 초행길을 앞을 보지 않고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항상 호흡을 같이 해야 하는 것도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오르막길은 조금씩 천천히 발을 딛고 내리막길도 마찬가지로 해야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큰 계곡 사이를 계속 걷는다. 끝이 안 보인다.


7월인데 고(高) 산은 맞는 것 같다. 눈과 비와 바람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들 수가 없다. 예상과는 다른 날씨라서 옷이며 장비며 심지어 장갑까지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얇은 옷에 바람막이를 겹쳐 입고 그 위 우비를 입은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우비도 소용없고 온몸으로 눈, 비를 맞아야 한다. 비와 눈이 번갈아 오면서 장갑은 다 젖어서 더 이상 보호의 기능은 없어진 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이 몇 시간 지속되니 H와 난 지치기 시작한다. 야크나 말을 타고 가는 (두꺼운 파카로 온몸을 완전히 무장한) 인도인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걷는다.




그러나 점점 상황은 가속되고 비탈길 오르막을 3-4시간 걸은 걸까. H와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둘은 불편해진다. 내가 힘들어서 화가 나는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온몸은 얼어 있고 배도 고프고 힘도 없고 내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럴 때 H의 손 하나도 나에게는 20kg는 족히 되는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의견이 좁아지지 않고 점점 부정적 생각들이 나의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급기야 난 화가 나서 그의 손을 놓는다. 그리고 당신의 지팡이에 의지해 혼자 가라고 한다. 그도 화가 나서인지 혼자 걷기 시작한다. 난 혹시라도 위험하면 달려가려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간다. 그는 아무 말이 없이 그냥 걷는다.


1분도 채 안 돼서 H는 방향을 잃어버린다. 그곳은 길은 있었지만 지표가 없다. 벽, 건물 등 지표가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그에게는 망망대해이다.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 움직이다가 지나가는 여행객이 잠시 없는 시간에 방향을 잃은 것 같다. 계속 지팡이를 바위에 치고 헛발질을 수없이 하고, 비탈길인지 바위가 있는지 물이 있는지 어떤 것도 알 수가 없다.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난 그냥 조용히 그를 뒤따른다. 화가 난 것보다는 그가 혼자 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정말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그는 내천을 지나는 중이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이 찬 상태라 한다. 그곳을 향해 가면서 그는 마치 그것을 건널 기세로 걸어간다. 몇 번을 넘어지려고 했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찾지 않는다. 결국 난 그를 세운다.


"여보... 같이가요"

"미안해"


우리는 화를 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된다. 멈춰 세우니 H는 숨을 헐떡이고 무릎은 탈이 난 것 같다고 한다. 고개도 못 들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물소리와 그의 숨소리가 뒤엉키고 순간, 난 H의 삶이 한순간에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물소리가 내 귓전에 더 크게 들렸다. 난 가슴이 뛰지 않는 것처럼 먹먹했다. 그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묻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 마음이 다시 무언가를 되새김질 할 것만 같아서 그저 미안함만 가득했다.


나의 삶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더 많았다. 어느 갈래든 내가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어쩌면 '심플한 삶'이었다. 그에 반해 H의 삶은 항상 ‘선택을 내려놓아야 하는 삶’이었다. 그저 그냥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고 그것을 늘 감당해온 삶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일어나 문밖을 나가니 늘 보였던 작은 꽃나무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상실감……. 그 상실감에 익숙해져 버린 H의 헛발질이, 나의 가슴에 깊이 들어온다.


난 예전에 그에게 물어본 적 있다. 앞을 볼 수 없는 걸 어떻게 받아들였냐고, 혹시라도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냐고. 그의 대답은 항상 어처구니 없다는 웃음이다.


"왜 원망해 ... 어머니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데 .. 뭘 원망해..."


그가 이유 없는 열병을 앓고 눈과 귀에서 피가 나고 몇 날 며칠을 앓고 나서 시력이 점점 잃어가면서 어머니는 그를 어떤 이유로 절에 보내야 했었다. 그 후 그는 10년간을 부모를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야 했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시력상실은 ‘인연과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부모님도 자신을 위해 절에 보낸 거라고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성인이 되어서 학교에 다시 들어가고 그 이후 수많은 거부와 제도적 한계와 신체적 한계 그리고 알 수 없는 유리천정을 겪어야 했다. 한계를 깨부수어 보려고 뛰어넘어 보려고 홀로 부단히 애쓴 흔적들이 있다. 그러나 혼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다. 그러나 그 부족은 본인의 '최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냥 그 선택을 내려놓고 주어진 다른 것을 수용하고 살았다. 그는 그런 일들에 이젠 익숙하다고 한다. 그는 아마 어떤 갈 수 없는 한계의 상황을 또 만난다 해도 또 그렇게 묵묵히 헛발질이든 지표 없는 길이든 계속 갈 것만 같았다. 그냥 받아들이면서...최선을 다하면서..


카일라스가 우리의 마음을 보여준 걸까? 정말 신이 우리를 지키고 있던 걸까? 마치 그가 만들어 온 지금껏의 삶이 나의 마음에 닿아 나의 인생의 물줄기와 합쳐져 함께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모르는 것들과 나의 모르는 것들이, 또 그가 알고있다 생각한 것들과 내가 알고있다 생각한 것들이 뒤엉켜 그냥 아무 형체도 관념도 없는 그 무언가로 존재하고있었다.


"여보 걸을 수 있겠어요?"

"조금만 더 쉬면 괜찮아 질거야.. 미안해.."

"그래요 더 쉬어가요 ..."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만 한 이 길 위에서 우리는 긴 호흡으로 이 지난날을 바라보며 감정을 추스르고 묵묵히 다시 일어서기로 한다.


우리는 둘이 끝을 모르는, 만년설이 쌓인 티베트고원을 바라보며 쉼을 갖는다. 그리고 카일라스에게 묻는다.

‘우리가 이 삶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있다면 어떤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손을 그의 어깨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까만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