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들어보는 클래식 23
1844년에 완성된 맨델스존의 마지막 대규모 관현악곡으로 대중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걸작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협주곡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정열의 감성이 곡 전반에 흐르면서도 조화로운 형식미가 돋보이는 명작이다. 대중의 인기 역시 최고라서 연주 빈도도 매우 높다. 연주 시간이 30분 이내로 길지 않고 멜로디도 쉬워 1악장 전반부만 들어도 금세 친숙해진다.
멘델스존이 이 곡의 작곡 계획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1838년, 그의 친한 친구이자 그 당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던 페르디난드 다비드에게였다. 그러나 이 곡을 완성하기까지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그 이후로 1845년까지 초연되지 않았다. 이 시기 동안, 멘델스존은 다비드와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러면서 다비드는 그에게 많은 조언을 주었다고 한다.
이 협주곡은 보편적인 협주곡의 특징(빠름-느림-빠름 구조의 3악장)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혁신적이었고 그 당시 많은 흥미로움을 자아내는 것이었는데, 이 곡이 가진 당대의 협주곡들과의 차이점을 찾자면 1악장 초반에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의 도입 부분 없이 거의 바로 나온다는 것이고, 또한 통작가곡형식으로 작곡되어 1악장, 2악장, 3악장의 악상이 서로 매끄럽게 연결된다는 점이었다.
이 협주곡은 초연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들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다. 그 인기는 지금도 이어져, 신예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꼭 연주해야 할 레퍼토리 중 하나이고, 낭만주의 협주곡들 중 입문곡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수많은 녹음을 남겼고, 많은 연주회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되며, 콩쿠르의 지정곡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출처 나무위키]
1악장 알레그로 몰토 아파시오나토(Allegro molto appassionato - 매우 열정적이고 빠르게). 현악기들이 속삭이듯이 화음을 연주하고 나면 바로 뒤를 이어 독주 바이올린이 치고 나온다. 멜랑콜리하면서도 화려한 선율이다. 이렇게 첫머리부터 독주가 등장하는 것은 멘델스존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독주 바이올린이 첫 번째 주제를 제시한다.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 분들도 익히 알고 있는, 너무도 유명한 선율이다. 독주 바이올린이 한바탕 기교를 마음껏 뽐내다가 관현악이 이어받아 첫 번째 주제를 포르티시모(ff)로 강하게 연주한다.
두 번째 주제는 앞 주제가 보여주는 화려함에 비해 다소 소박하고 우아하다. 오보에와 바이올린에 이어 클라리넷과 플루트까지 합세하면서 피아니시모(pp)의 여린 음량으로 두 번째 주제를 제시한다. 잠시 후, 다시 독주 바이올린의 화려한 테크닉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카덴차가 연주된다. 이렇게 1악장의 전개부와 재현부 사이에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놓이는 것도 멘델스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작법이라고 할 수 있다.
2악장은 느린 안단테(Andante)로 시작한다. 1악장이 끝나자마자 쉼표 없이 바순의 연주로 2악장에 들어선다. 그 뒤를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매우 감성적인 주제 선율을 아름다운 톤으로 연주해 나간다. 마치 꿈결과도 같은 선율이다. 그렇게 잔잔하게 음악이 펼쳐지다가 바이올린 파트와 오보에가 어울리면서 잠시 강렬하게 고조된다. 그리고는 마무리 장면에 들어서게 되면, 독주 바이올린이 원래의 주제를 거의 끊어질 듯한 느낌으로 연주하며 아스라한 느낌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3악장은 알레그로 논 트로포(Allegro non troppo)로 시작해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Allegro molto vivace)로 전환된다. ‘빠르되 지나치지 않게’로 시작해 ‘매우 빠르고 생기 있게’로 분위기를 바꾸라는 뜻이다. 우아하게 시작해서 격렬하게 달려 나가는 악장이라고 할 수 있다. 14마디의 서주가 끝나면서 음악이 가파르게 고조된다. 관현악에 팀파니가 어우러지고 독주 바이올린이 짧은 음형들을 튀어 오르는 느낌으로 연주하는 장면들이 빠르게 펼쳐진다. 특히 종결부(코다)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보여주는 팽팽한 힘과 기교가 매우 인상적이다.
[출처 : 채널예스]
음악이란 듣는 사람에 따라 혹은 듣는 환경과 상태에 따라 매우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 곡을 처음 듣게 되었을 때 나의 귓가에 가녀린 소녀의 애처로운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세계 제2차 대전의 전화가 휘몰아치는 그 어느 날, 하얀 눈이 처연하게 내리는 독일의 어느 도시. 폭격으로 부서지 건물들과 간간이 터져 나오는 폭발음과 거대한 불꽃. 그 무시무시한 광경 뒤로 어린 소녀가 아빠와 함께 독일군복을 입은 군인의 총부리에 모질게 끌려 나온다. 아빠는 소녀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불안에 떠는 아이의 머리를 지긋이 감싸주며 추위와 공포에 떨고 있는 소녀를 달래어 준다.
멀리 보이는 기차. 검은 철마 뒤편으로 붉그스름한 색깔의 화물차량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다. 총부리에 내몰리는 많은 소녀와 같은 유태인들. 불안과 공포에 질려 비척거리며 끌려 나오고 있다. 색 바래고 낡아 빠진 화물칸의 벽면은 사람들이 올라탈 때마다 삐걱거리며 불우한 승객을 대신하여 마음껏 비명을 질러댄다. 무표정으로 말없이 쳐다보는 일반 독일인들의 회색의 낯빛. 무언의 방관자들.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이 올라탄 화물칸에는 두려움이 배어 나오는 물음표가 가득히 쌓인다. 소녀는 아빠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아빠는 소녀를 감싼 두 팔을 놓칠 수 없었다. 화물칸이 유태인으로 가득 차면 독일군인은 냉정하게 밖에서 문을 잠겨 버린다. 갇혀버린다. 모든 빛이 막혀버린다. 모든 길이 닫혀 버린다. 그들은 짐승처럼 막다른 곳에 잡혀버렸다.
공포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폐쇄의 공포를 이기지 못한 몇몇 사람이 채 닫혀가는 문을 밀어내고 독일군을 밀친다. 땅으로 추락하 듯 내려서자마자 철길을 따라 탈주를 감행한다. 심장을 망치로 후드려 패는 것 같은 기관총 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을 무참하게 깨부순다. 하얗게 쌓인 눈 위에 후드득 떨어지는 진한 핏빛 방울들. 소녀는 아빠의 품 안 파고들어 모든 두려움과 슬픔을 눈물 하나로 견뎌내야만 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 좌우로 흔들리는 화물칸, 꽉 찬 사람들로 인해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황. 극악한 환경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공포심이 모든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부서진 화물칸의 벽 사이로 회색의 건물들이 스쳐간다. 수십 개의 컴컴한 터널을 지나간다. 이름 모를 강과 산을 뒤로하고 세상의 끝으로 이어진 철길 위를 달려간다.
얼마를 달려갔을까? 총에 맞은 죽어가던 어느 유태인의 목에서 새어 나오던 공포에 찬 비명 소리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비정한 철마의 화통에서 짙은 어둠 속으로 울려 퍼진다. 급하게 멈추는 기차의 제동에 낡아빠진 화물칸이 삐걱거린다. 아니 온 몸뚱이가 삐걱거린다. 이리저리 사방으로 날뛰는 독인 군인의 외침이 연합군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폭탄소리에 아득하게 묻혀 버린다. 부서진 화물칸에서 뛰쳐나와 사방으로 도망가는 유태인들. 아빠는 소녀를 가슴에 안아 들고 무서운 적막함이 깔려있는 숲 속의 전나무 사이로 미친 듯이 뛰어간다. 터지는 폭탄소리에 뒤섞여 들리는 독일군의 기관총 소리가 아빠의 가슴에 숨어있는 가녀린 소녀의 귓가를 사정없이 때려 버린다.
폭설에 세상은 온통 흑과 백이 지배하고 있다. 도망치는 유태인, 쫒는 독일군만이 고요한 숲에 존재한다. 한참을 도망쳐 온 산속의 작은 동굴. 부러진 다리를 찢은 속옷으로 둘둘 묶고 쩔뚝거리며 달리던 아빠가 쓰러져 있다. 소녀는 아빠의 옆에서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멀리서 들리는 독일 군견의 악의에 가득한 울부짖음. 고열과 고통에 정신 잃은 아빠 옆에서 소녀는 무릎 꿇는다. 바이올린의 고음이 소녀의 기도를 대신한다. 절규의 목소리는 애절한 노래로 동굴 속에서 공명하여 하늘로 울려 퍼진다. 가녀린 소녀의 앙증맞은 손이 하나로 모여진다. 기도에 대한 화답이었을까? 하늘은 엄청난 폭설로 소녀가 숨은 동굴을 악의적인 적들의 눈에서 가려준다.
급박한 1악장이 지나면 부드럽고 평안한 바순의 소리가 안단테의 느긋한 리듬으로 소녀의 꿈속을 찾아든다. 다정하게 소녀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쫓아 달려가면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이 소녀를 기다리고 있다. 소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의자를 끌어당겨 앉는다. 평화를 기원하는 아빠의 기도에 소녀는 두 손을 뻗어 엄마와 아빠의 손을 꼭 그러잡는다. 소녀의 머릿속에는 기도가 끝나자마자 먹을 기름기 번지르한 칠면조의 다리 한 조각만 가득하다. 폭설이 멎은 숲은 고요함을 되찾고 두 손을 꼭 쥐어 잡고 쓰러진 소녀의 옆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빠가 자신의 윗도리를 벗어 소녀를 덮어준다.
밝게 개인 하늘이 화사한 햇볕을 동굴 입구에 선사한다. 들리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아빠는 소녀를 가슴에 꼭 끌어 앉는다. '여기가 마지막인가? 너 만은... 너 만은 살리고 싶은데. 하느님이시여'
부러진 다리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아빠의 눈에서 절망의 눈물이 흘러나온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아빠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소녀를 쳐다보는 아빠의 눈. 아빠를 바라보는 소녀의 눈. 콩닥거리는 소녀의 고동소리가 아빠의 넓은 가슴속에서 조금씩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변해간다. 아빠와 함께라면 마지막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동굴 속으로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함께 들려오는 억센 미국식 영어 발음. 커지는 아빠의 눈. 하늘에서 내려온 듯 차가운 동굴 속으로 따스한 손이 아빠와 소녀에게 내려온다. 이제 소녀는 아빠 품에 안겨서 하얀 눈이 내린 피난소의 지붕을 바라보며 함박 미소를 띠운다.
끊어질 듯 실낱같이 이어지는 고음의 바이올린 소리는 나를 한 편의 영화 속으로 몰고 간다. 30분의 러닝타임이 지나고 현실로 돌아온 지금도 하얗게 내린 눈을 바라보는 맑고 고운 소녀의 웃음소리와 애절한 기도 소리가 섞여 들리는 환상에 빠져있다.
자! 이제 팝콘과 콜라를 준비하세요. 나는 피터팬을 이끌고 환상의 섬으로 날아가는 팅커벨이 되어 멘델스존 감독이 만든 30분짜리 걸작 영화 속으로 당신의 손을 잡고 이끌고 가겠습니다. 함께 가시죠.
https://youtu.be/GMRhmDh_fHM?si=G5iNBTktgk2SMWSR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 Mendelssohn-Violin Concerto in E minor op.64 | 올가 파르초멘코- 바이올린 [출처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