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들어보는 클래식 25
니콜로 파가니니(Nicolo Paganini)가 만든 24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카프리스 중 마지막 곡이다. 24개의 카프리스 중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바이올린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최상급 기교 모음집 같은 곡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콩쿠르나 입시곡으로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당시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입을 모아서 이런 어려운 곡을 어떻게 연주하냐고 했을 정도였다. 하나의 주제와 그에 대한 12개의 변주, 그리고 짧은 코드로 이루어져 있고, 각 변주마다 대표하는 기교가 있다.
그리고 이 곡이 "단순한 주제와 그걸 응용한 기교의 총 모음집"이란 점에서 후대 유명 작곡가들에 의해서도 편곡이 자주 되었다. 프란츠 리스트의 파가니니 대연습곡 6번, 요하네스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의 파가니니 변주곡이 그 예. 대연습곡은 24번의 바이올린 기교를 피아노로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피아노 기교의 극한,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협주곡 양식으로 된 변주의 아름다운 조화가 특징이다.
카프리스는 자유로운 형식의 기악 독주곡을 의미한다. 파가니니는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 24곡을 묶어 출판했는데, 이게 바로 '24개의 카프리스'이다. 각 곡마다 하나 이상의 테크닉을 중점적으로 담고 있어서 기교 훈련과 콩쿠르 필수곡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일명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 인물로, 바이올린, 비올라, 클래식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가이고 지휘자이다.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의 상징이며, 낭만주의를 예고했으며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연 최초의 연주가이다. 몇몇 경우에 따라서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 신(新) 고전주의 시대에 활동했다고 보기도 하며, 또는 초기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했다고 보기도 한다. 아무튼 파가니니는 음악의 낭만주의 시대를 연 선구자격인 인물임에는 분명하며, 후대 대표 낭만주의 작곡가인 푸란츠 리스트,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등이 파가니니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재능과 작품, 그에 반비례하는 수준의 막장 인생 때문에 이른바 악마의 재능의 원조로 꼽히는 인물이다. [출처 : 나무위키]
이 곡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연주곡 중 하나라고 한다. 그 이유는 하나의 곡 안에 다양한 기교가 총망라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즉, 이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곡 안에서 여러 개의 고난도 테크닉을 구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속주만으로는 연주가 불가능하다. 또한 무반주 형식이라 연주자의 표현력과 리듬감, 톤 컨트롤이 모두 완벽해야 하다 보니 연주자의 감정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곡이라 부담이 매우 크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곡에는 다양한 변주가 들어있다고 한다. 빠른 속도의 연주, 힘차게 왕복하며 긴급함을 느끼게 하는 연주, 갑작스럽게 부드러운 칸타빌레 (노래하듯)로 변주하기도 하고 저음과 고음을 번갈아 연주하는 고급 기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현이 끊어질 듯한 화려한 트리플 스타핑으로 연주자들을 곤욕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왼손 피치카토로 어마어마한 양의 왼손 연주를 요구하기도 한다. 고음부의 인공 하모닉스와 거의 4옥타브의 간격을 이동시키는 고난도의 기술을 수행하여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변주로 전체 곡의 분위기는 수시로 바뀐다. 빠르고 느리고 높고 낮고 경쾌하고 부드럽고 때로는 우울함을 가득 담아내기도 하다가 미친 듯한 광폭함으로 천변만화한다. 극단적인 고음의 애절함으로 여린 감정을 호소하다가 느리고 평온한 리듬으로 애수 젖게 만들어 버린다. 한마디로 모든 감정이 뒤섞여 있는 종합선물 박스와 같은 느낌의 연주곡이다. 지금도 판매가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7080 세대의 사람들은 아마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종합선물 세트라는 커다란 종이 박스. 생일 혹은 크리스마스에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놓인 어린 시절 최고의 선물이었다. 물론 우리 집이 부자는 아니었기에 내 일생을 통틀어 3번 정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것도 가장 비싼 대형 종합선물 세트가 아니라 가장 작은 크기의 선물 세트였다. 물론 그것도 나에게는 감지덕지였다. 박스 안에는 기껏해야 늘 먹던 과자 몇 개와 초콜릿 그리고 사탕 등이 들어있을 뿐이었는데도 무엇이 그리도 신기하고 궁금했던지 박스에서 하나하나 확인하고 꺼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이 곡에는 어린 시절 막 깨어난 침대에서 머리맡에 놓인 종합 선물 세트의 포장을 풀어 속에 들어있는 과자와 사탕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기뻐서 웃고 즐기는 순수한 희열감이 느껴진다. 이 연주를 처음 접한 것은 2013년 상영된 버나드 로즈 감독의 데이비드 가렛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를 보았을 때였다. 연주회에 늦은 파가니니가 연주회장 뒷문에서 입장하면서 이 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파가니니의 천재성과 악마성을 강렬한 음악과 열광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통해 극적으로 매우 잘 연출한 장면이었다. 더군다나 주연인 데이비드 가렛은 대역 없이 모든 연주를 직접 하였다고 하여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였던 영화이기도 하다.
이 곡을 들으며 우습게도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중 2 때부터 혼자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다. 그냥 취미로 친구에게 주법이나 코드에 대하여 몇 개 배웠기 때문에 그냥 혼자 즐기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도 갑갑한 학교생활에서 잠시 탈출할 수 있는 활력소와 안식처가 되어 주었기에 밤마다 혼자서 옥상에 올라가서 가요 몇 곡을 연주하며 노래도 부르곤 하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3학년이 되고 대입이라는 최종 빌런을 떡하니 마주하게 되었을 때 심적 압박은 극도로 가중되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하였다. 공부를 못 할수록 느끼는 압박의 무게는 커진다고. 들리는 숨소리 하나, 책장 넘기는 소리 하나에도 서로 날카롭게 반응하고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교실 내에서 잦은 싸움이 발생하곤 하였다.
나 역시도 그랬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암기의 연속. 수십 번 물을 부어서 진하게 우려낸 사골곰탕 국물처럼 젊은 청춘에서 쏙 빠져 학교 쓰레기통에 버려진 여리고 어린 감성들. 입시라는 거대한 틀 속에 갇혀 획일화된 공부 기계가 되어버린 답답한 현실. 그럼에도 거역할 수 없는 부모님들의 기대와 성원. 그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회의감과 우울함이었다. 스스로 사회라는 거대한 감옥에 수용된 죄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빠삐용이나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처럼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상상을 자주 하였다. 그러나 그러기에 나는 너무도 평범하고 겁 많은 범인에 불과하였기에 감히 사회의 굴레와 부모님의 기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현실에 무릎 꿇어야 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 두려웠기에, 무서웠기에, 용기가 없었기에....
그렇게 묵직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마다 기타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우리 집은 길가에 지은 2층 집으로 13평 정도 크기의 옥상이었고 그 중앙에 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으신 작은 평상이 하나 있었다. 나름 저녁노을을 바라보거나 별들을 바라보며 기타를 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나에게 있어서 기타는 연주를 위한 악기라기보다는 막힌 감정을 방출하는 수단이었다. 없는 실력에 아르페오 주법이나 스리핑거스 주법을 이용하여 제법 감미롭게 연주하기도 하고 피크를 이용하여 디스코나 빠른 비트의 고고 주법으로 기타가 부서지기 일보 직전까지 마구 쳐대기도 했다.
모든 곡에는 작곡가가 의도한 연주 기법과 방법이 있다. 물론 반드시 주어진 기법과 방법으로만 연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실히 수행하였을 때 작곡가의 의도와 감정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 나는 치기 어린 마음에 그런 정해진 룰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항심으로 일부러 모든 곡을 다르게 연주하고 싶었다. 실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빠른 비트의 곡은 매우 느리게, 감미로운 발라드 곡은 트로트처럼 꺾어서, 즐겁게 부르는 경쾌한 곡은 매우 침울하고 우울하게 부르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기타 주법도 마음대로 해보고 싶었다. 내려쳐야 할 순서에서 올려치고 위아래로 반복하는 주법을 아래로 빠르게 내려치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바꿔서 표출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는 썩 좋지는 못하였다. 막히고 끊기고 엇나가고 때로는 기타 줄을 두 개씩이나 끊어 먹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이 미친 나만의 연주는 나의 모든 감정을 질펀하고 끈적끈적한 찌꺼기로 녹여내어 옥상의 바닥으로 혹은 개밥바라기 별의 은은한 빛줄기 속으로 훨훨 날려 배출시켜 주었다.
카프리스 24번을 연주하던 파가니니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내면에 쌓여있는 답답함과 불만 그리고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은 갑갑함을 미친 듯한 변주 속에 풀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생각될 정도의 미친 듯한 파가니니의 이 곡에는 삶과 죽음, 늙음과 젊은 그리고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빙의된 것처럼 빠져드는 바이올린의 선율에는 열정이 들어있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부수고 때리고 갈아내고 뒤섞어 최종에는 희열이라는 감동이 카타르시스가 되어 온몸이 몰려드는 전율에 부르르 떨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솔직히 어린 시절에 느꼈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감당해 낼 만큼의 열정이나 감성은 남아있지 않다. 급작스런 감정의 변화를 스스로 온몸으로 거부하고 피곤해한다. 그냥 안정적이고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성향이 크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나의 어설프지만 모든 열정을 쏟아붓던 나만의 기타 연주가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열정? 젊음? 다시 갈 수 없다는 아쉬움? 아니면 그리움 일지도 모르겠다.
깊이와 근원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 그러한 내적 공포가 만연되어 있는 세상. 그리고 알 수 없는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회의 압박. 그런 것들에 힘들고 지쳐있을 때 파가니니가 전해주는 감정의 희열을 느껴보자. 가슴을 뻥 뚫어주는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자
https://youtu.be/O_nxNaAcqwo?si=-UuQzJct-_tDpe_S 클래식연주자가 가장 피하고 싶은 그 곡.. Caprice No.24 - Paganini (Two Violin)│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출처 : 유튜브]
https://youtu.be/sIRrpFZUxRA?si=nRGYxUxQhAChQf5v 꼭 한 번은 봐야 할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명연주, 명장면! Paganini Rhapsody on Caprice 24 - David Garrett [출처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