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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 트로이메라이 - 보드라운 아기의 볼살을 쓰다듬으며

이제야 들어보는 클래식 27

by 곰탱구리


로베르토 슈만 『어린이의 정경 Op.15』제7곡 - 달콤한 꿈 속에 빠진 아이의 볼살에서 느껴지는 행복 한가득


『트로이메라이(Träumerei)』는 독일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이 1838년에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의 정경(Kinderszenen), Op.15』의 제7곡이다. 독일어 ‘Träumerei’는 ‘공상’ 또는 ‘꿈꾸기’를 뜻하며, 이 곡은 제목 그대로 잔잔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단순한 멜로디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깊은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는 작품으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어린이의 정경』은 슈만이 연인이자 후에 아내가 되는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과 떨어져 있는 동안 작곡한 작품이다. 그는 클라라와의 사랑, 그리고 자신의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이 곡들을 만들었다. 원래는 어린이를 위한 곡이 아닌, “어른이 된 이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음악”으로 기획되었다. 이 곡『트로이메라이』는 이 모음곡 중에서도 가장 단순하면서도 감정적으로 깊은 곡으로, 특히 슈만이 지닌 내면의 섬세함과 낭만적 성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출처 : 티스토리 유니콘마을]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은 독일의 작곡가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평론가이다.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슈만은 피아니스트가 되기 전에는 법을 공부했다. 프리드리히 버크를 사사하여 피아니스트로 훈련을 받던 중, 손 부상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가 끝났다. 슈만은 그 후 음악적 에너지를 작곡에 쏟아부었다. 1840년에는 결혼을 반대했던 프리드리히와 길고 신랄한 법적 투쟁 끝에 그의 딸 클라라 비크와 결혼했다. 클라라 자신도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신동이었기 때문에 슈만과 클라라는 음악에 있어서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클라라와 슈만은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와도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슈만은 1840년까지 피아노곡만 썼는데, 이후에는 관현악 작품들과 가곡을 썼다. 평생 동안 교향곡 네 곡, 오페라 한 편을 비롯해 많은 작품을 썼다. 슈만은 유명한 문학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모티프를 통해 그의 음악에 등장인물들을 불어넣은 것으로 유명했다. 슈만은 1853년부터 자신이 독극물이나 흉기로 위협을 받고 있다는 망상을 동반할 정도로 심각한 조울증을 앓았다. 양극성 장애와 수은 중독이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 1854년 자살 시도 후 슈만은 현재 본에 있는 엔데니히의 정신병동에 자발적으로 입원하였다. 정신병적인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그는 회복하지 못하고, 2년 후 46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사망했다. [출처 : 위키백과]


이 곡『트로이메라이』는 F장조, 3/4박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형식은 단순한 세 도막 형식(ABA)이다. 전체적으로 느리고 조용한 템포가 유지되며, 오른손의 선율이 왼손의 부드러운 반주 위를 유영하듯 흐른다. 선율은 단조롭지만 섬세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평온함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화성은 변화가 크지는 않지만, 작은 전조를 통해 감정의 미묘한 흐름을 전달한다. 특히 이 곡은 많은 연주자들이 추모곡 혹은 회상곡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인간 내면의 정적이고 따뜻한 감정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라디오 방송에서 전사자들을 기리는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출처 : 티스토리 유니콘마을]


이 곡은 부드러운 카스텔라 같다. 포근한 거위털 이불 같다. 푹신한 하얗고 정결한 시트가 깔려 있는 퀸 사이즈의 침대 같다. 은은한 파스텔 톤의 강보에 싸여 단잠에 빠져 쌕쌕거리며 잠든 애기의 볼 살 같다. 뽀얗고 통통하게 솟아올라 숨 쉴 때마다 살짝 흔들거린다. 창문을 스쳐 불어오는 실바람이 애기 볼의 미세한 털을 스치며 지나가면 간지럼움을 견디지 못한 피부들이 앙증맞게 서로를 만져준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의 고저가 없다. 있어도 매우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움직인다. 무심코 누른 피아노 소리가 애기의 단잠을 깨울까 두려워서 한 번에 누르지 못하고 음과 음 사이에 아주 미세한 멈칫거림이 있다. 그런 배려와 안정이 평온함과 차분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사랑이 되어 입꼬리가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살짝 올라가는 평화의 미소를 띠게 만든다.


내겐 자녀가 2명 있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이다. 물론 큰애가 아들이다. 지금은 다 커서 직장도 다니고 결혼도 준비하며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1998년쯤이었다. 큰 아이는 6살, 작은 애는 3살이었다. 7월 말에 정기휴가를 내었고 이번 휴가는 지인의 집으로 피서를 가기로 했다. 지인은 영흥도라는 인천에서 가까운 섬에 거주하고 있었다. 피서 당일 옷과 물놀이 용품 그리고 갯벌에서 조개 잡을 때 사용할 여러 가지 용품들을 한 바리 챙겨서 차에 때려 싣고 연안부두로 달려갔다. 지금은 영흥도가 대부도에서 다리로 연결되어 차로 갈 수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명실상부한 섬이었기에 배를 타야만 했다. 물론 바다를 항해(?) 하는 시간보다 배를 타기 위해 표를 구매하고, 대기하고, 내리고 하는 부수적인 시간이 몇 배나 더 걸리고 고생스러웠지만 그래도 갈매기와 함께하는 20여분의 항해는 나름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과 여행의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배를 따라 쫓아오는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며 까르르 웃던 아이들의 표정에서 가장으로서 느낄 수 있는 뿌듯함과 행복함을 느끼도 했다. 지인의 집은 장경리 해수욕장 근처였기 때문에 선착장에서 30분 이상 차로 들어가야 했다. 지금은 10분이면 차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을 당시에는 도로가 제대로 깔려있지 않아서 1.5차선 정도 넓이의 흙길을 달려야 했다. 가다가 반대쪽에서 차가 오면 교차하여 통행하지 못하고 후진하여 조금 넓은 곳에 정차하여 지나가게 한 후 다시 가야 할 정도로 열악하였다. 그래도 산 넘고 갯벌 건너 도착한 장경리 해수욕장은 서해안 답지 않게 넓은 모래사장과 장대한 노송이 해안선을 펼쳐져 있어 인천 근교가 아닌 어딘가 미지의 먼 여행지를 찾아온 것 같은 설레임과 두근거리는 느낌을 주었다. 밀물 때에는 물에서 수영하고 썰물 때에는 삽과 바구니를 들고 여러 조개와 작은 게를 잡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지인 집에서 샤워를 말끔히 하고 마당에서 삼겹살과 우리가 잡은 조개를 불에 구워 먹었다. 물론 가볍게 맥주도 곁들여서. 가족 모두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문제는 밤이었다. 여름이라 덥고 습기가 많아서 그런 것이었는지 아니면 영흥도라는 섬의 특성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기나 다른 벌레보다 지네가 특히 많았다. 밤 10시가 넘자 에프킬라와 향까지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방까지 작은 새끼 지네들이 침범하였다. 지인은 이미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아 새끼들은 물지 않아 아무 걱정 하지 않아도 되어"하고 말했지만 물놀이와 해루질에 곯아떨어져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놈들이 우리 아이들 몸속에 들어가 깨물면 어쩌지? 자는 데 입 속으로 기어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는 과도한 걱정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한 손에 파리채, 다른 한 손에는 에프킬러를 손에 쥐고 자고 있는 아이들 옆에 바투 앉아 개미새끼 한 마리도 못 지나가도록 밤새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했다. 물론 밤 동안 새끼 지내 7마리 추살이라는 위대한 전과를 만들기도 하였다.


밤새 불을 끄지 못하고 사투를 버리는 동안 나는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천진난만하게 자고 있는 아이들 특히 아직 3살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애의 모습을 바라볼 때는 지네들이 득실거리는 서해의 어느 섬이 아니라 하얀 구름 위 천국의 깨끗하고 편안한 침실에 있는 기분이었다. 물론 배경음악으로 이 곡이 잔잔히 흘러 나오고 있을 것이었다. 활동량이 많고 워낙 부산하여 좀 말랐던 큰 아이와 다르게 여성스럽게 다소 느긋하고 조신하며 다식주의자였던 작은 애의 토실토실한 볼살은 흐릿한 형광등 아래에서도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선풍기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볼살 위의 잔털들의 부드러운 움직임도 깨물고 싶을 만큼 귀여움을 선사하였다. 그러나 고개를 조금만 돌려 방바닥을 살펴보면 발퀴레의 기행이 따로 없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조그마한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나만의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가 되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라는 우스꽝스러운 금언을 그날 밤 나는 정색한 얼굴로 진지하게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불면에 지친 나의 머릿속에서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와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이 동시에 연주되어 혼미한 정신을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치열한 밤이었다.


그날 자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볼을 만지며 느꼈던 행복과 천국이 이 곡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비록 포근한 에이스 침대에 푸근한 거위털 이불은 아니었고 나에게는 편안하고 안전한 잠자리가 아니었지만 밤새 지켜볼 수 있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흐린 하늘을 보면서도 흐뭇하게 미소 짓게 만들어 주는 내 삶의 이유가 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아비는 늙어가고 아이는 자라난다. 내가 아이들의 부드러운 볼살을 바라보며 느꼈던 이 행복함을 나의 아이들도 자신의 아이들의 볼살을 바라보며 또 그 아름답고 보드라운 볼살을 살뜰히 지켜가며 행복을 느끼는 그런 삶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는 부드러운 카스텔라다. 포근한 거위털 이불이다. 푹신한 하얗고 정결한 시트가 깔려 있는 퀸 사이즈의 침대다. 은은한 파스텔 톤의 강보에 싸여 단잠에 빠져 쌕쌕거리며 잠든 애기의 볼 살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2분 31초 동안 경험하는 천국의 행복이다.



https://youtu.be/rImVFozA0NI?si=Wnzf2HUyLeRG06j6 손열음│슈만, 트로이메라이 (R.Schumann, Träumerei) Pf.Yeol Eum Son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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