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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스트 행성 - 100년 전 만나는 상상의 은하계 전쟁

이제야 들어보는 클래식 29

by 곰탱구리

구스타브 홀스트의《행성》(The Planets, Op. 32) - 귀로 파고드는 광대한 우주의 전쟁 서사시 '스타워즈'



행성》(The Planets, Op. 32)은 영국의 작곡가 구스타브 홀스트가 쓴,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이다. 작곡자에게 점성술을 가르쳐 준 클리포드 백스의 제안으로 1914년에 착

상하여 1916년에 작곡을 마쳤으며 1920년 10월 버밍엄에서 애플비 매슈스(Appleby Matthews)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홀스트가 '행성조곡'의 작곡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1913년 그의 친구 클리포드 백스가 점성술에 관해 소개하는 데서 출발한다. 1925년 출판된 클리포드 백스의 회고록인 'Inland Far'에서 그는 1913년 3월의 어느 날에 그의 형인 아놀드, 밸포어 가디너 그리고 구스타브 홀스트와 가졌던 휴일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클리포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홀스트는 나에게 그가 막 점성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알렸으며, 그러한 성향의 화젯거리로 오랫동안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가디너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는 그가 중얼거리는 것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정말!' 그리고 우리의 대화가 그를 상하게 할 문제는 없었다."


책의 뒤에서 클리포드는 별도로 언급하기로는 홀스트에게 점성술을 소개한 이는 자신이었다고 적었으며, 홀스트가 점성술로부터 끌어낸 영감을 소진해 버리고 나서 그는 그것에 대한 흥미를 거의 잃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홀스트의 딸 이모겐은 '행성조곡'의 원고 사본판 서문에서 그녀의 부친이 읽은 책인 1913년 런던에서 출판된 Alan Leo의 '천궁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적었다. 사실 Alan Leo는 1차 대전 전과 전쟁 중에 점성술을 장려하는 일종의 대중적인 책과 인쇄물의 저자였다. 홀스트는 이 책을 보고(비록 친구들의 점괘를 맞추는 것뿐이지만) 일생동안 '점쟁이' 노릇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Leo의 책에는 '화성 전쟁의 신', '토성 수확자'처럼 각 행성의 성격에 대해 간단한 기술이 되어 있었고, 홀스트는 이에 착안하여 자신의 작품에도 각 행성 별로 부제를 붙였는데, '해왕성'에 붙인 '신비로운 자' 만은 Leo의 기술을 그대로 갖다 붙인 제목이었다.


《행성》은 태양계의 일곱 행성에 해당하는 그리스 신화의 신을 각각 주제로 한 일곱 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 천문학이 아닌 점성술 상의 행성 배열로 나누었고, 행성과 그에 해당하는 이미지의 그리스 신화 신들을 나타내는 표제가 붙어 있고, 곡에도 물론 반영되어 있다.

〈화성, 전쟁을 가져오는 자〉(Mars, the Bringer of War)

〈금성, 평화를 가져오는 자〉(Venus, the Bringer of Peace)

〈수성, 날개 달린 파발꾼〉(Mercury, the Winged Messenger)

〈목성, 즐거움을 가져오는 자〉(Jupiter, the Bringer of Jollity)

〈토성, 황혼기를 가져오는 자〉(Saturn, the Bringer of Old Age)

〈천왕성, 마술사〉(Uranus, the Magician)

〈해왕성, 신비로운 자〉(Neptune, the Mystic)


점성술의 이미지 외에 동시대에 작곡된 곡들도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지는데, 이교적인 기괴한 스토리와 거대한 관현악 편성, 미칠 듯이 변하는 박자와 불협화음의 향연으로 스캔들이 되었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봄의 제전'이나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 클로드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와 '야상곡' 등의 영향이 종종 지적되곤 한다.


당시에는 연주하기 어려운 곡으로 악명이 높았고, 초연 때의 연주는 연습 시간 부족 등의 이유로 꽤 어설펐다고 한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개량되었던 녹음 기술 덕에 홀스트 자신이 직접 런던 교향악단을 지휘해 두 종류의 음반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것마저 한정된 녹음 시간과 기술상의 한계 때문에 곡의 독특한 색채는 거의 죽어버린 소리가 나왔다. 그 당시의 대표적인 음반 포맷이었던 SP는 한 면당 기껏해야 3분~4분 반 정도밖에 녹음할 수 없었다. 그런 탓에 대곡을 녹음할 경우, 판 숫자를 줄이려는 프로듀서나 엔지니어 등 녹음 스태프의 요청 때문에 빨리 내달려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홀스트도 음반 녹음 할 때 원래 연주 시간보다 빠른 템포로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독일로부터 압류해 온 오픈릴 테이프와 그 레코더의 개량 작업, 그리고 스테레오 녹음의 상업화 등으로 인해 녹음의 질이 부쩍 좋아진 덕에, '스펙터클 한 레퍼토리'를 찾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음반 취입곡이 되었다.


명왕성이 미국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에 의해 발견된 것은 홀스트의 생전이던 1930년 2월 18일이었다. 하지만 점성술에만 관심이 있었고 천문학에 대해선 딱히 관심이 없던 홀스트는 단순히 무시했고, 곡을 추가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아마도 명왕성을 작곡할 시 곡의 원래 의도가 왜곡될 염려가 있어 그렇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명왕성'을 추가하는 작업은 홀스트가 죽고 한참 지난 1970년대부터 다른 작곡가들에 의해 시작했다. 2000년 할레 오케스트라(Hallé Orchestra)의 위촉으로 콜린 매슈스가 〈명왕성, 새롭게 하는 자〉(Pluto, the renewer)를 써서 이모겐 홀스트에게 헌정했다. 매슈스는 해왕성의 종결 부분을 명왕성으로 넘어가도록 고쳤다. 명왕성이 포함된 《행성》은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할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2000년 5월 11일 맨체스터에서 초연했다. 2006년 8월 국제천문연맹이 명왕성의 분류를 행성에서 왜행성으로 바꾸면서 《행성》은 다시 지구를 제외한 모든 태양계의 행성을 다루는 곡이 되었다. 하지만 곡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가 있어서 포함시켜 연주하거나 아니면 독립적으로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홀스트의 행성은 20세기 영화 음악과 현대 클래식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특히 1악장 〈화성〉은 존 윌리엄스의 《스타워즈》, 한스 짐머의 《글래디에이터》 등 다양한 영화 OST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목성〉의 중간부 선율은 애국적인 내용의 가사가 붙어 '내 조국이여, 나 그대에게 맹세합니다'(I vow to thee, my country)라는 노래로 인기를 얻었다.


구스타프 홀스트는 영국의 작곡가로 20세기 영국의 대표 작곡가들 중 하나이다. 유럽의 전통적인 작곡 방식에서 벗어나 동양적인 요소를 도입하는데 적극적인 면을 보이기도 했다. 홀스트는 첼트넘에서 출생하였다. 부모는 스웨덴 계이다.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했으나 오른팔에 신경염이 있어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트롬본을 연주했다고 한다. 원래 성 앞에 오는 접미사로 폰(von)이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 대한 적개심으로 빼버렸다. 딸 이머전 홀스트(Imogen Holst) 역시 작곡가였다. 세 곳에서 명예 학위를 받고, 왕립음악대학(RCM)의 명예회원이 됐으며,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외국 영화 중에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영화를 손꼽으라면 아마도 스타워즈, 쥐라기 월드는 꼭 10개의 순위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1977년에 개봉된 스타워즈는 SF영화의 새로운 혁명을 주도한 영화이다. 그 영화의 OST 역시 한 음을 듣는 순간 '아!' 하고 바로 스타워즈가 떠오를 정도로 유명하다. 그런데 홀스트의 1악장 <화성>을 듣는 순간 기존 오리지널 OST 대신 이 음악을 가져다 영화 OST로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화성이란 곡도 듣는 순간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 그냥 스타워즈란 영화가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곡이다. 무량한 우주 한 구석에서 거대하고 검은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가슴이 오그라 들고 심장이 쫄깃해진다. 마치 유명한 조스의 OST 도입부처럼 온몸이 두근두근거리게 만든다. 제목 그대로 전쟁의 검은 그림자가 온 지구를 덮어 버리는 것 같은 두려움이 생생히 전달되어 팔에 소름이 솟아오른다.


거대한 우주선의 문이 열린다. 나는 넋을 잃고 그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곳은 우주선의 심장부인 조정실이다. 나는 다스베이더의 우측 한 발자국 뒤에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섰다. 은하제국의 대 함대가 다스베이더의 공격 명령을 기다리며 위풍당당하게 도열해 있다. 휘몰아치는 전화의 불길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B-013 행성에 몰아닥치기 직전이다. 다스베이더는 손을 들어 올린다. 이에 따라 한 병사가 공격 버튼에 손을 올린다. 조정실은 거친 숨소리와 긴장감으로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는다. 드디어 다스베이더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고 병사는 레이저 공격무기의 발사 버튼을 누른다. 우주 대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레이저 포 소리가 우주 공간을 찢어 버릴 듯이 요동치게 만든다. 그렇게 전쟁은 시작된다.


<목성>의 도입부에서는 거대한 공룡들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환상과 놀라움을 전해 주었던 영화 쥐라기 월드가 떠오르게 만든다. 산을 넘고 고개를 지나 드디어 만난 드넓은 초원. 푸르름이 가득한 녹색의 대지에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였던 거대한 생명체가 숨을 쉰다. 어슬렁 거리며 거닐고 풀을 뜯어먹고 커다란 소리로 포효하며 자신의 존재함을 알린다. 우주와는 또 다른 신세계이다. 믿을 수 없는 환상의 세계가 좁디좁은 현실에 갇힌 뇌의 공간을 뛰어나와 무한한 상상 속에 펼쳐진다. 환상적인 화음이 주는 즐거움은 새롭고 신비로운 세계를 현실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감성의 즐거움이다. 단순히 자연이 주는 장엄함을 넘어서 현실에 꽉 막혀있는 모든 장벽들을 우르르 부숴 버린다. 더 이상 놀랄 만한 것이 없으리라 생각한 갑갑한 삶에 무언가 더 새로운 것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부여한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고 역할이다. 이 홀스트의 목성은 그 역할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그 외의 각 장의 행성들의 곡 들도 각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쓸쓸하게 또 때로는 편안하고 평화롭게 우리의 귀에 속삭여 준다. 모든 행성은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각자의 음색에 담아 노래한다. 태양계를 구성하는 7개의 행성은 지구와 더불어 모두 하나로 어울러 거대한 우주 속에서 태양계라는 당당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늘은 도심을 벗어나 인공적인 불빛이 비치지 않는 외딴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그리고 밤하늘을 보라. 수많은 항성과 행성들 속에서 현실을 벗어나 신비로움과 환상에 젖어보자. 작고 작은 지구를 벗어나 광활한 우주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광대한 초원 속에서 좁고 편협함을 벗어나 보자. 우리의 작은 가슴에도 거대한 우주를 품을 수 있음을 느껴보자. 그것이 해탈이고 득도일 것이다. 그곳에는 아마도 100년 전에 우리보다 먼저 우주와 선사시대에 도착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https://youtu.be/1UfTOsPMg5M?si=4jjts9jfMPz7MKyN [4K] 클래식계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홀스트 행성 l G. Holst / The Planets, Yoel Levi(2024.6.29)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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