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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 페르 귄트 - 음악으로 듣는 인생의 장편 서사시

이제야 들어보는 클래식 24

by 곰탱구리

《페르 귄트 작품번호 23》와 《페르 귄트 모음곡 작품번호 46·55》- 음악으로 느끼는 인생의 희로애락과 세월의 무상함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사랑


이 모음곡은 헨리크 입센의 극 페르 귄트에 에드바르 그리그가 곡을 붙여만든 부수음악과 모음곡이다. 1875년에 작곡되어 1876년 크리스티아니아(현 오슬로)에서 초연되었다. 이 중 '아침의 기분', '오제의 죽음', '솔베이지의 노래', '산왕의 궁전에서' 등의 곡은 다양하게 편곡되어 많은 대중문화 및 게임 등에 사용되었으며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하다.


그리그는 극작가 헨리크 입센과 교류가 많았는데, 입센은 자기가 쓴 희곡 '페르 귄트'의 극 부수음악을 그리그에게 부탁한다. 이 희곡은 현실보다는 모험적 공상에 빠지기를 좋아하던 페르 귄트라는 젊은이가 사고로 인해 환각 속에서 산의 마왕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답을 하다가 '인간은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라는 결론을 얻게 되고, 결국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던 여인을 버리고 해외로 나가 어려 모험을 겪은 후, 거지꼴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서는 자신의 삶에 가치가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죄가 무엇이었지를 논하는, 상당히 난해하고 철학적인 희곡이다.


그리그는 1874년부터 작곡에 들어갔고, 결국 1876년 초연되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노르웨이인의 안 좋은 점만 가득 모아놓았다, ' '음악이 너무 서정적이다.'는 등의 좋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리그 또한 극장 경영진이 상연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음악에 제한을 건 것 때문이라는 불평을 하기도 했다. 원곡을 작곡한 시기로부터 10년 이상이 흐른 후, 그리그는 26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원곡(Op.23)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곡을 추리고, 약간의 편곡을 가미하여 1888년(Op.46)과 1893년(Op.55) 각각 4곡씩으로 구성된 모음곡으로 발표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페르 귄트 모음곡이다. 여담으로 모음곡의 순서는 원곡의 순서와는 많이 다르게 배치되어 있는데, 아침 희망으로 시작되어 모험과 몰락을 거쳐, 비탄으로 끝나는 절묘한 조합을 보여주고 있어, 아마도 그리그가 희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가만하여 모음곡의 순서를 배치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선곡과 배치를 여러 번 바꿔가며 무척이나 고심을 했던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나무위키]


그리그는 총 27개의 곡 중 뛰어난 작품을 모아 제1 모음곡과 제2 모음곡에 각각 4개의 곡을 수록하여 놓았다.

제1 모음곡

● 제1곡 -아침 기분

배를 타고 장사를 다니던 중, 모로코에서 맞은 아침 일출의 기분을 묘사한 음악이다. 아침 해가 뜨는 듯한

부드럽고도 활기를 주는 곡이다.

● 제2곡 - 오제의 죽음

페르 귄트의 어머니 오제가 사망하게 된다. 그녀는 아들 때문에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던 인물로, 페르

귄트도 이때만큼은 슬픔에 잠겨 잠시 지난날을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 슬프고 비통한 곡조로, 추모식이

나 영결식과 같은 행사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 제3곡 - 아니트라의 춤

페르 귄트가 장사를 하러 아랍에 갔다가 왕궁에 초청을 받아 잔치가 열리던 중, 아랍 공주 아니트라가 춤

을 추며 페르 귄트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이다. 요염한 듯 관능적인 음악이다.

● 제4곡 - 산속 마왕의 궁정에서(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산속에서 사고를 당해 기절하게 되고, 환각 속에서 마왕의 딸을 만나 마왕의 궁정에 찾아간 장면에서 사용

된 음악이다. 마왕의 딸을 꼬드기려다 마왕의 궁정까지 찾아가서 괴물들이 춤추고 떠드는 축제에 질려 도

망가게 된다. 라벨의 볼레로처럼 동일한 멜로디가 매우 여리게 시작하여 점차 강해지는데, 이때 타악기와

금관악기군이 가세하면서 점차 광란의 도가니가 된다.


제2 모음곡

● 제1곡 - 잉그리드의 탄식

잉그리드의 결혼식에서 만난 솔베이그라는 아가씨가 그녀의 부모님이 그의 나쁜 평판을 싫어한다는 이유

로 같이 춤추는 것을 거절하자, 홧김에 신부인 잉그리드를 납치하여 산속에서 같이 밤을 보낸다. 이때 잉 그리드가 슬퍼하며 탄식하는 장면에서 쓰인 음악이다.

● 제2곡 - 아라비아의 춤

모험을 떠난 페르 귄트가 장사를 하러 아랍에 갔다가 왕궁에 초청을 받아 잔치가 열리던 중, 아랍 여인들

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이다.

● 제3곡 - 페르 귄트의 귀향

페르 귄트가 큰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도중, 거친 풍랑을 만나는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이다. 배는

좌초되고 모든 것을 잃고 페르 귄트는 간신히 목숨만 챙겨서 해변가로 떠밀려간다.

● 제4곡 - 솔베이그의 노래

이 선율은 극 중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내용은 모두 페르 귄트를 떠나보낸 솔베이그가 홀로 외로워하

며 걱정을 담아 부르는 노래이다. 구슬프면서도 평온하고 쓸쓸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기다림의 외로움과

심신이 안락한 휴식을 취한 것 같은 평온함이 섞여 있는 곡이다.


이 모음곡은 현대의 많은 매체에서 배경음악이나 노래의 샘플링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산속 마왕의 궁정에서'로 7080 세대의 어린 시절에 유명하였던 애니메이션인 '형사 가젯트'의 메인 OST로 사용되었다. 또한 '솔베이그의 노래'는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앞머리에 흐르는 하모니카의 음률로 이 음악의 서주에서 따온 것이다. TNT의 곡 'End OF The Line'에서 중간 간주로 이 곡의 중요 멜로디가 나오기도 한다. 카멜롯의 곡 'Forever'과 태연의 정규 3집 INVU의 두 번째 트랙 '그런 밤'에도 샘플링되어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총 8개의 곡으로 구성된 이 모음곡은 각 곡마다 지니고 있는 분위기가 서로 확연히 다르다. 희곡의 흐름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분위기로 인하여 전체 모음곡을 한꺼번에 감상할 경우 감정의 급격한 희비의 변화로 명곡에 대한 감동이 감소하게 될 소지도 상당히 있다. 실제로 제1 모음곡의 경우 1곡 '아침기분'은 상당히 목가적이고 부드럽다. 반면에 제2곡 '오제의 죽음'은 추모곡으로 쓰일 정도로 매우 슬프고 진중하다. 이어지는 제3곡은 요염하고 오묘한 감정을 전해주고 있으며 제4곡 '산속 마왕의 궁정에서'는 미친 광란의 취한 야만인들의 춤을 보는 듯한 기괴함과 오싹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이러한 심한 감정의 기복을 불러일으키는 각 곡들의 분위기는 마치 발라드와 로큰롤을 함께 섞어서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음곡이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감정의 급격한 변화들을 희곡의 줄거리라는 강력한 무기로 오히려 더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입센이 쓴 '페르 귄트'라는 희곡의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그 감정의 변화에 엇나가지 않고 몰입이 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명곡 감상을 위해 그 정도의 수고는 청취자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망해버린 집안의 허풍선 같은 페르 귄트. 결혼식장에서 잉그리드를 납치해 동네에서 추방당하고 꿈속에서 트롤도 만나고, 모로코에서 장사도하고, 아나트라라는 여자에게 사기도 당하는 등 굴곡진 삶과 사건 사고를 겪게 된다. 마침내 노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도 배가 난파되어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된다. 페르는 고향에서 자신의 허망된 인생에 대하여 후회와 회한을 느끼며 자신의 인생이 그 존재성을 상실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때 그를 믿고 기다려 주었던 솔베이그가 나타나 "나의 믿음 속에, 나의 희망 속에, 나의 사랑 속에 있었어요."라고 말해주며 페그 귄트는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솔베이그의 평온한 자장가 속에서 그는 지치고 고된 일생을 마침내 내려놓게 된다. 이 모음곡에 들어있는 단 8개의 연주곡 만으로 한 인간이 살아온 길고 지난한 인생여정과 희로애락을 진하게 녹여내고 있다. 사랑과 이별, 욕망과 회환 그리고 '삶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글이 아닌 음악으로 풀어내어 가슴에서 감정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한 곡을 소개하기도 벅찬 이 명곡들을 감히 8곡씩이나 늘어놓은 것은 너무나 좋은 명곡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정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전달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다. 한 곡만 들었을 때 느끼는 감동보다는 전체적 줄거리를 따라 전체의 모음곡을 듣게 되었을 때, 각각의 곡에서 느껴지는 단편적 감동에 그치지 않고 마치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희에서 비로 비에서 애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종합적인 감동을 선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함을 무릅쓰고 전 곡을 소개하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든 활동과 가치가 돈이라는 물질에 집중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자식을 위해, 부모를 위해, 영달을 위해, 권력을 위해 등등 너무도 많은 이유로 돈을 벌기 위해 생의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여하고 있다. 물론 돈이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기에 우리는 돈 이상의 중요한 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 모든 것을 한 곳에 모으면 최종에는 '자신'이라는 결론에 귀결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행복, 자신의 만족 혹은 자아실현 등등 모든 바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자신이라는 글자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는 것. 그것이 결국이 삶의 정답일 것이다. 가장 어렵기도, 평생을 풀어도 풀어도 결코 정답을 쉽게 찾기 어려운 문제이다. 혹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너무도 허망할 정도로 쉽게 깨닫기도 한다.


삶이란 단어, 생이란 단어 자체가 무척이나 무겁고 어려운 단어이다. 그 앞에 '나'라는 단어가 추가되면 마치 초등학생이 중간고사 산수 시험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라'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에 느끼는 아찔함을 느끼게 된다. 삶에 대한 답은 살아보아야 나오는 것이다. 정답이건 오답이건.... 그러나 그 답을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기에 자신의 답은 영원히 한 줌의 흙에 묻어버리게 된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말자. 힌트는 어떤 난제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 힌트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생애에서 반추하여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페르 귄트의 굴곡진 삶에서 희로애락의 변화 속에서 감정 속에 담긴 잡힐 듯 말 듯한 희미한 힌트를 얻고 위안과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난 왜 사는 걸까?' 하는 현실의 답답함과 꽉 막힌 앞날의 걱정이 당신을 짓누를 때, 이 모음곡을 감상하며 희곡 속의 한 인간 '페르 귄트'가 되어 당신 만의 답을 찾아 생애이라는 바다로 모험을 떠나보지 않으시렵니까?.



https://youtu.be/MqEmsOG3omM?si=5DBrlvFPDzkExDuO 모음곡『페르귄트』 / Suite "Peer Gynt" op.46, 55 - 그리그(Grieg) [출처 : 유튜브]


https://youtu.be/a7NoogZ2eFo?si=aoIDAqTdorXYO-Wq 태연의 '그런 밤'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노래가 너무 좋아서 한번 들어보시라고 첨부했습니다.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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