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카사노바 애꾸
애꾸의 이름은 원래 씩씩이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지만 한쪽 눈이 함몰되어 있다. 야생에서 동물들은 장애가 있으면 서열이 낮아 무리에서 끼지 못하거나 살아남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애꾸는 꾸러기 가족들이 꼬맹이였을 때부터 병사들이 던져주는 음식도 꾸러기 냥이들에게 빼앗기고 얻어먹지 못했다. 한쪽 눈으로 기운 없이 기가 죽어서 지내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녀석에게 씩씩하게 살라고 씩씩이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먹이도 따로 챙겨서 더 주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애꾸는 더 이상 기죽지 않았고 건강해졌으며 꾸러기 녀석이 먹을 것을 낚아채려고 하면 앞발로 꿀밤을 줘서 자기 것을 움켜쥐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녀석의 밥그릇을 뺏어서 먹기 시작했고 자기가 대장인 양 심술도 부리며 여러 암컷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더 이상 씩씩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을 만큼 씩씩해졌고 심지어 심술쟁이 애꾸로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애꾸는 어느 수컷 성묘와 싸웠는지 얼굴을 크게 다쳐서 얼굴에 큰 흉터와 함께 다친 함몰된 눈에서 진물이 나와 한동안 고양이용 항생제를 사서 먹였었다. 이듬해에는 성한 한쪽눈마저 다쳐서 두 눈에 진물이 심하고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진물이 심해서 걷지도 못하고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한쪽 눈으로만 가지고 덩치가 큰 수컷과 싸우려고 보니 애꾸가 밀리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약국에서 고양이용 항생제를 사 와서 통조림과 섞어서 며칠 동안 무척 신경 써서 먹였다. 다행히 녀석은 잘 먹어서 금세 회복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애꾸를 병원에 데리고 갈려고 했었는데 녀석은 더 구석으로 숨어서 절대 잡히지 않았고 더 예민해져서 나조차도 피하려고 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는 걱정도 되었었다. 다행히 녀석은 잘 나아서 한쪽눈으로 잘 보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해진 애꾸는 발정기가 되자 어린 암컷들을 쫓아다니거나 때론 옆에 끼고 함께 있는 모습을 급식소 주변이나 구석진 곳에 자주 보게 되었다. 암컷들은 성묘라고 하지만 태어난 지 고작 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냥이들이다. 성묘 암컷들은 애꾸를 상대 안 해주고 대장역할을 하는 턱시도 문양의 수컷냥이는 내가 있으면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이곳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애꾸는 서열이 높은 대장 고양이를 피해 열심히 암컷들을 쫓아다닌다.
애꾸는 나름 사랑꾼이다. 암컷에게 아주 잘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암컷에게 먹을 것을 양보해서 먼저 먹게 하고 자신은 뒤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수컷 어린냥이들이 오면 못 오게 쫓아내서 암컷이 편하게 사료를 먹게 한다. 이러 때 보면 정말 멋진 남자 고양이이다.
애꾸는 봄만 되면 수컷 본능이 여전히 왕성하여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으로 치면 카사노바처럼 천하의 바람둥이인 셈이다. 그러나 카사노바같은 바람둥이를 나는 미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마음이 안쓰럽다. 애꾸는 암컷 냥이들을 사랑하여 쫓아다니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이들의 사랑을 이루어지게 할 수 없으니 어찌할까....
애꾸가 대장 냥이 몰래 암컷냥이를 쫓아다니는 것이 안쓰러운 것이 아니다. 애꾸는 2년 전에 이미 중성화 수술을 해서 더 이상 짝짓기를 할 수 없는 수컷 냥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수컷의 본능은 왕성하니 우짜란 말인가....
2년 전에 간부님들의 도움을 받아 시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었다. 그때 애꾸도 중성화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3년째 애꾸는 중성냥이가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해마다 봄이 되면 애꾸는 상남자가 된다. 심술쟁이 같아 밉다가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이 녀석은 나에게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니 어찌하면 좋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