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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희 Aug 26. 2023

길냥이들에게도 인생은 있다. 5

살아있어 줘서 고마웠던 아이

 살아 있어 줘서 고맙고 반가운 녀석이 있다. 가슴과 배 부분만 하얗고 전반적으로 노란색이고 진한 노란 줄무늬를 한 수컷 고양이다. 이 녀석을 처음 본 것은 어느 여름이 시작될 때 숙소 앞에 있는 급식소 근처다. 이곳에도 고양이들이 많이 있어서 두 곳에 급식소를 놓고 출퇴근할 때마다 사료와 물을 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가는 무렵의 초여름에 4~5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힘없이 누워 있었다. 빼짝 말라서 앙상한 등뼈는 다 드러났고 볼 부분도 쏙 들어간 연령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새끼냥이였다. 낯선 이를 보고 도망가려는 듯 힘없는 네 다리를 움직이려 하지만 네 다리를 겨우 지탱할 정도로 다리를 바들바들 떨 뿐 제대로 걷지도 못한 상태였다. 몇 걸음 간신이 움직이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급한 대로 통조림 습식 사료를 가져와서 앞에 놓아주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뒤로 물러나 기다리자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먹이 가까이 왔다. 하지만 냄새만 맡을 뿐 먹지 못했다. 이렇게 쪼그라들 정도로 마른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먹이도 못 먹는 것을 봐서는 살기 힘들겠다 여겨졌다. 구조라도 해서 돌보고 싶었지만, 워낙 아이가 무서워해서 다가갈 수도 없었다. 자칫 잘못 만졌다가는 그나마 있는 가는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렇게 안타깝게 지켜보다 숙소로 들어왔고 다음 날 저녁에도 녀석은 급식소 근처에 있었다. 다가가 사료와 통조림을 섞어서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냄새만 맡을 뿐 앞에 앉아만 있었고 오히려 다른 냥이들이 모여들어 자신도 주기를 기다렸다. 다른 녀석 들게도 똑같이 나누어 주자 웬 별식이냐는 듯 신나서 먹는데 욘석은 영 아니었다. 먹을 힘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고 또 하루가 갔다. 녀석은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로 기운을 차리지 못한 듯 내가 와도 누워서 나를 볼뿐 도망가거나 다가오지 않았다. 기운 없는 녀석을 위해 닭가슴살 간식을 사서 사료랑 함께 주기 시작했다. 사람도 복날 삼계탕을 먹고 보양하듯 녀석들도 닭고기 먹고 기운 차리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 나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인지 어느 날 급식소에 사료를 주고 있는데 욘석이 내 근처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아직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말랐지만 제법 다리에 힘이 들어갔고 심지어 뛰기도 했다. 그렇게 녀석을 위해 별식을 주자 내가 오는 소리만 듣고도 내 옆으로 달려와 냥냥하며 소리를 냈다.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친구도 만들었는지 하얀 바탕에 연한 갈색 점박이 무늬를 한 녀석과 나 잡아 봐라 놀이를 한다. 오전에 주고 간 사료를 잔뜩 먹었는지 배도 볼록해졌고 얼굴은 개구쟁이 미소를 띤 듯 말똥말똥해졌다. 얼른 간식 달라고 보채듯 냥냥하는 소리를 내며 내 주변을 뛰어다닌다.


 고맙다.....

불현듯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고 살아 낸 녀석이 기특하기도 하고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졌다.

죽음의 고지에서 일어나 살아낸 녀석을 보는 것은 감동이었다.

언제 저렇게 건강해져서 해맑아졌는지....

개방정 떨 듯 뛰어다녀서 이 녀석의 이름을 깨돌이라고 불렀다.    

 

  “깨돌아 고마워. 건강하게 자라줘서.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네가 개방정을 떨어주니 나의 힘든 하루가 씻겨지는 것 같구나.

지치지 않고 다시 힘을 내서 내일 아침에도 내일 저녁으로 사료와 물을 기쁘게 놓아줄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 전부라는 것이 너무 미안하구나.....

깨돌아~ 때론 너희가 있는 이곳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도,

심지어 너희들을 싫어해서 너희들 밥그릇을 내다 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세상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것처럼 사는 것이 너무 버겁다고 느낄 때에도,

한 가지는 기억해 주렴.

세상 어느 곳에는 너희를 지켜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 어느 곳에는 너희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도 너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아. 관심을 가져주고 돌봐 줘서 고마워. 이제부터는 매일매일 이곳에서 너를 기다릴게."라고 깨돌이도 마치 나의 말을 알아들은 듯 나를 보며 냥냥냥 말을 건네는 것 같다.     


 퇴근 후 숙소에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사료와 물병을 들고 나오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쪼로롱 달려와 반갑게 맞이하는 냥이가 있다. 밥 주는 곳마다 촐랑촐랑 따라와서는 “냐앙~냐앙~”하며 쫑알댄다. 그러면 나도 녀석의 얼굴을 보며 “오늘도 잘 지냈어? 요즘 들어 갑자기 추워졌는데 몸은 괜찮고?” 그러면 녀석은 “냥냥냥” 하며 떠든다. 쪼그리고 앉아서 녀석과 몇 마디를 주고받으면 다른 냥이 몇 마리들도 모여든다.  길냥이를 돌보는 것은 때론 즐겁고 보람도 있다.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몸이 고달프고 힘들어서가 아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다. 이 녀석들의 슬픈 삶을 눈으로 자주 보게 되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다 도와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도와줄 수도 없고 오히려 어떻게 하지 못하고 바라만 봐야 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난 깨돌이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한동안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즐겁게 뛰어놀던 천방지축 깨돌이를 볼 때면 내 마음도 기뻤다. 그리고 깨돌이가 오랫동안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해 겨울 혹한기 이후 깨돌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급식소에 사료는 남아 있었고 채 먹지 못한 물그릇만 얼음이 되어 남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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