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한 모성애의 사랑이 있고, 친화적인 사랑도 있으며 남녀 간의 사랑도 사람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있는 것 같습니다.
까미를 처음 본 것은 꾸러기 가족들 밥을 주면서 한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입니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 것은 까미가 워낙 조심스 운 성격이라 제가 없을 때 살며시 사료를 먹고 가다가 언제부터인가 꾸러기 녀석들이 시끌벅적하게 모여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밥그릇 한 개를 슬며시 차지하며 먹더라고요. 꾸러기 녀석들이 경계를 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오래전부터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산책을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냐앙~냐앙~” 하고 마치 저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났지 뭐예요.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계속 고양이 소리가 나는 거예요. 두리번거리며 어떤 커다란 나무를 보는데 그 속에서 내려와 저에게 다가오는 검은색 고양이가 한 마리가 있지 뭐예요? 먼저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와 주니 반갑더라고요.
“냥이야?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하고 말을 붙이자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냐앙” 하고 댓구를 합니다. 그 이후로도 내가 지나가면 먼저 “냐앙~”하고 부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친해진 것 같아요. 유독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까미는 밥만 먹으면 쓰윽 사라졌고 봄이 와서 발정기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나무 위에 숨어 혼자 있었어요. 온몸이 멋진 검은색 털옷을 입고 초록색 안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작고 날씬한 몸매라 아주 섹쉬하답니다. 그래서 이름을 까미라고 지어주었지요.
막내는 꾸러기 가족 중에 서열이 낮은 듯 냥이들이 사료를 먹으러 모여들어도 무리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죠. 그래서 저는 막내를 위해 항상 같이 먹을 수 있게 막내 앞에 사료 그릇을 놓아주었고 점점 무리에 끼어 먹기 시작했지요. 막내는 노란색 바탕에 진한 노랑 줄무늬를 했으며 꼬마보다 노랑색이 더 많았죠. 다른 형제들보다 조금 작고 순둥이처럼 생겨서 막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죠. 막둥이 가족들은 어미 빼고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냈고 봄이 찾아오자 모두들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며 부대 내 구석구석을 순찰하듯 돌아다녔습니다. 밥 먹자고 해도 다 같이 모이지 못하는 날이 많았는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크면 각자 자신의 일로 바쁜 건 매한가지 인가 봅니다. 어느 날 모처럼 녀석들이 밥 먹는 자리에 다같이 모이더라고요. 그러더니 막둥이가 까미에게 대시를 합니다. 제법 어른 티도 나고 늠름해진 모습을 보이면서요. 그리고 가끔 보면 둘이 같이 다니는 모습도 봤는데 거의 막내가 까미를 졸졸 따라다니는 수준이었죠. 어느 날은 막내가 사료는 안 먹고 까미가 사료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좋아 죽겠다는 듯이 바닥에 뒹굴뒹굴하지 뭐예요. 녀석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사랑 가득함을 알겠더라고요. 녀석들은 이제 겨우 한 해를 살았을 뿐인데 더는 애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서로 뒹굴뒹굴 뛰어놀던 애기티가 하나도 없네요. 막내는 까미의 소심함과 조용함을 존중해 주며 너무 급하지 않게, 너무 직설적이지도 않은 모습으로 다가갑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막내, 연애를 아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까미와 막둥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서서히 걱정되고 심란해졌는데 한 참 후에야 살짝 와서 밥만 먹고 사라지는 까미와 가끔 외롭게 지켜보는 막내의 쓸쓸함을 몇 번 보았지요. 그리고 얼마 후 막내도 사라졌고 까미도 사라졌습니다. 일주일, 이 주일.... 오랫동안 까미와 막내를 볼 수 없어서 슬픈 생각이 났었죠. 혹시 잘못된 것을 아닌지, 부대 밖으로 나가서 못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아님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 건지, 하고요.
그리고 무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의 어느 날 급식소에서 길냥이들 사료를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기 고양이 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는데 다음날도 아기 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지 뭐예요.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음을 먹고 주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돌담과 풀숲이 있는 한 곳에 작은 바스락하는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풀들을 헤집으며 자세히 살펴보니 작고 검은 물체가 보였습니다. 옳지 여기 있구나 하고 가까이 가서 잡아보니 한 손안에 들어올 만큼의 작은 턱시도 문양의 아기 고양이였습니다. 내가 손으로 들어 올리자 더 앙칼진 목소리로 울어 댑니다. 이 녀석 겁 없이 돌아다니다 돌담 위 어디에서 떨어져 어미에게 가지도 못하고 우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나타난 고양이가 까미였습니다. “까미야? 너 여태 어디 있었어? 왜 여기 있어?” 오랜만에 다시 만난 까미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근데 설마 요 꼬맹이의 엄마가 까미? 까미 앞에 새끼를 놓아주자 새끼가 까미 품에 쏙옥 들어가 안기네요. 까미도 걱정스러운 듯 새끼의 냄새를 맡고 털을 핥아 주며 반깁니다. 언제 임신해서 언제 출산을 한 걸까?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어 까미의 배 주변을 살폈으나 잘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돌담 위 한쪽에 턱시도 무늬의 새끼가 두 마리 더 있고 회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 새끼가 더 있네요. 총 네 마리의 새끼를 혼자 낳고 혼자 키우느라 안 보였던 거네요. 에구 고생했을 까미가 안쓰러워졌습니다. 근데 막내는 왜 없지?
막내보다는 엄마를 많이 닮은 새끼들입니다. 근데 더 이상 막내를 볼 수 없었습니다.
새끼들은 지극정성으로 먹이고 핥아주는 어미의 사랑과 돌봄으로 건강하게 자랐고 첫째 같이 늠름하고 활발한 턱시도 냥이는 총명이라고 이름 지었지요. 시크하고 날카롭지만 혼자서도 주변 탐색을 잘하고 다니는 턱시도 두 번째 냥이는 씩씩이. 셋째는 여자 아이인 줄 알았던 눈 주변은 아이라인을 한 듯 이목구비 또렷하고 예쁜 눈과 얼굴, 조심성을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받은 듯 엄청 조심스러운 아이. 총명이 와 둘이서 잘 뛰어다니며 노는 회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를 미모라고 지었습니다. 아름다울 미(美)에 얼굴 모(貌) 자를 썼습니다. 진짜 예쁘게 생긴 아이였는데 나중에 병원에 데려가서야 수컷인 줄 알았지 뭐예요. 그전까지는 너무 예뻐서 암컷인줄 알았답니다. 그리고 유독 소심하고 겁이 많은 턱시도 냥이 소심이. 소심이는 정말 소심해서 다른 세 녀석들은 나랑 친해져서 내 가까이 모이기도 하고 간식을 주변 얼른 달라고 보채기도 했는데 소심이는 멀리서 쪼그려 앉아만 있거나 엄마 옆에만 있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네 녀석들은 개구쟁이 같이 활발하게 잘 자라주었고 유독 정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수많은 길고양이들 중에 유독 이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뛰어노는 모습만 봐도 흐뭇했으니까요.
엄마바라기 총명이랑 까미랑 뽀뽀를 하네요. 그 사이에서 물 먹는 미모입니다.
그렇게 겨울이 왔고 범백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그 겨울에 소심이 먼저 사라졌고 총명이가 급식소 앞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총명 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그곳에서 범백혈구 감소증이라는 병명을 알게 되었죠. 전염성이 매우 높고 치사율이 매우 높은 무서운 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까미 새끼들 모두가 전염되었을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소심이가 일주일 전부터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죠. 하는 수 없이 큰 동물 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곧이어 씩씩이도 녀석들 집에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해서 구조하려고 했습니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녀석은 내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달아나면서도 구토를 했고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또다시 잽싸게 벗어나 좁고 어두운 빗물 터널 속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손으로 뻗어도 잡을 수 없는 깊고 어두운 곳을 들어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이 죽을 곳을 찾아 들어간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죠. 다음은 미모 차례였습니다. 미모는 다행히 범백에 감염되었지만 심하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하고 며칠 만에 퇴원해서 저와 함께 가족이 되어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 다시 밖으로 내보내면 죽을 것 같아서죠. 총명이는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있었고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해 병원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범백은 새끼 고양이의 경우 치료를 못 받을 경우 치사율이 99%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며 성묘의 경우도 치사율이 80%에 이른다고 하네요. 그때 당시 많은 고양이들이 죽어 나갔던 그때였습니다. 어미인 까미도 범백에 걸렸을 확률이 매우 높았으나 다행히 면역력이 강해서 스스로 이겨낸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서 총명이의 사체를 가지고 와서 총명이가 살았던 근처 야산에 묻어 주었습니다. 날이 얼마나 추웠는지 남자 간부님이 삽질을 해도 땅이 파이지 않았을 정도였어요. 그 간부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총명이를 묻어 주는데 까미가 냐앙 하고 나타나지 뭐예요? 까미는 워낙 소심해서 저 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절대 나타나지 않았던 아이인데 낯선 간부님이 있어도 다가오지 뭐예요. 그리고 총명이의 사체에 다가오려는 것을 혹시 감염될까 싶어 얼른 종이에 싸서 땅에 놓았습니다. 까미도 코로 킁킁 거리더라고요. 자기 새끼인 줄 냄새로 아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흙을 덮어주고 발로 꼭꼭 눌러줄 때까지 까미는 가지 않고 옆에 있더라고요. 에구...... 어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까미의 첫 새끼들이 막내와의 열애로 태어난 예쁘고 사랑스러운 새끼들 세 마리가 모두 죽자 까미도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까미는 새끼들 곁을 떠나지 않고 주변에서 함께 살았는데 녀석은 자기 새끼들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었죠.....
막내가 떠난 자리가 유독 더 쓸쓸하고 외롭게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요?.....
길고양이들의 삶은 왜 이리 고달플까요?
왜,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외줄 타기 하듯 위태롭게 살아가야만 할까요?.....
척박한 길 위의 삶을 사는 고양이들이 더 이상 고달프지 않기를, 이들도 행복하기를, 그리고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이 망상일까요?
“까미야 미모 걱정은 하지 마. 미모는 내가 잘 보살필게. 내 아들같이 키우고 평생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 건강만 잘 챙기렴. 너마저 가면 안돼? 알았지?” 하고 까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까미도 제 말을 이해 했는지 다행히 까미는 무사했고 그해 무척 추운 겨울을 함께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네 마리의 세끼를 낳았고 다행히모두 살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