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마음을 가진 이쁜이라는 작고 소심하며 겁이 많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이쁜이를 처음 본 것은 4년 전 파란 하늘과 솜털 구름이 너무 멋진 어느 날이었지요. 힘겨운 상담을 마치고 잠시 쉴 겸 밖을 나와 몇 걸음을 걷자 풀밭에서 폴짝 뛰며 무언가를 잡고 있는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를 봤습니다. 메뚜기 같은 벌레를 잡아서 와작와작 씹어 먹는 모습이 너무 맛있게 먹어 이상하다 싶었지요. 그리고 며칠 후 구석진 한 곳에 이목구비 뚜렷한 너무 작고 예쁜 아기 고양이 두 마리를 봤습니다. 꼬맹이들은 나를 보자 겁나게 뛰어 달아나 숨어 버렸지요. 그리고 며칠 후 그 꼬맹이들이 이쁜이 새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풀밭에서 허겁지겁 벌레를 잡아먹던 녀석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젖먹이 애기가 두 마리나 있으니 어미인 이쁜이는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요. 뭐든 먹어야 했고 뭐를 먹어도 어미는 배가 고팠겠지요. 그래서 다음날 캔사료 한 통을 가지고 와서 이쁜이 아지트 근처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쁜이는 벌컥벌컥 먹더라고요. 그 모습을 안쓰럽게 보고 있는데 꼬맹이들이 어미가 무언가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자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라고요. 내가 무서워서 못 오는것 같아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랬더니 녀석들 슬금슬금 다가 오더니 어미가먹던 캔사료를 '냥냥 냥냥'하며 신나게 먹네요. 그러자 이쁜이는 뒤로 물러나 새끼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더라고요. 에구.... 새끼들 먹으라고 자신의 배고픔을 참고 물러나는 모습이 참 짠하게 오더라고요. 같은 엄마로서 어떤 마음인지 알겠더라고요.
다음날에는 사료도 가져와서 캔사료와 함께 섞어서 큰 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이번에도 새끼들이 달려와 먼저 먹네요. 이쁜이는 새끼들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이쁘던지 이 녀석의 이름을 이쁜이라 지어주고 "이쁜아" 하고 불렀지요. 그런데 자기 이름을 아는지 제가 "이쁜아" 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와 내 앞에 옵니다. 아주 가까이는 아니고 1m 앞. 딱 여기 까지요.
추운 겨울이 와서 물도 꽁꽁 얼고 사료도 꽁꽁 얼어서 어린 새끼들도 얼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되어 스티로폼으로 집을 만들어 작은 구멍을 냈고 그 안에 작은 담요도 넣어 주었지요. 녀석들 처음에는 근처에도 안 가더니 나중에 보니까 내가 만들어 준 집 안에서 나오네요. 얼굴 가득히 미소가 지어지더라고요. 그리고 안도감이 들었어요.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다행히 녀석들은 겨울을 무사히 보냈고 개나리가 피는 모습도 보게 되었지요. 이제는 안심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늦기 전에 중성화 수술을 위해 이곳의 성묘들을 포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쁜이 새끼 중 너무 잘생긴 새끼 한 마리가 함께 포획되는 바람에 6개월도 넘었기도 해서 중성화 수술을 시행하는 곳에 보냈습니다. 시에서 길냥이들을 위한 중성화 수술을 무료로 진행해 주어서 이곳에 여러 마리를 중성화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녀석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무척 슬펐습니다. 심지어 중성화 수술을 시행한 것에 대해 후회와 죄책감 마저 들었지요. 이쁜이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녀석은 나머지 새끼 한 마리도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내고 혼자 돌아다녔습니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크면 어미는 새끼들을 독립시키는데 이때가 그때였던 거죠. 나머지 새끼는 유난히 겁에 질려 혼자 숨어 있는 날이 많았고 사료를 주면 조심스럽게 와서 먹었는데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죠. 이상하다 생각하며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어느 간부님 한 분이 이쁜이 새끼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얼마 전에 묻어 줬다고 하네요..... 슬픔은 항상 혼자 오지 않는다더니 이쁜이가 그토록 애지 중지 키웠던 새끼들 모두 잃게 되어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쁜이도 한동안 안 보이더니 슬픔을 딛고 온 듯 내 앞에 다시 나타나 냥냥냥 합니다.
그리고 따스한 봄이 시작되면서 이쁜이의 배가 점점 불러오네요. 뭐지?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 이쁜이는 한동안 사라진 것이 밀월여행을 갔다 온 것이었죠. 그리고 한두 달 뒤 이쁜이는 출산을 했고 일주일 정도 급식소에 나타나지 않다가 배가 쏙 들어가서 나타났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출산의 고통은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힘든 생사를 넘나드는 일이건만 고양이들은 그 어려운 일을 혼자 해내고 혼자 몸을 추스릅니다. 얼핏 보기에도 많이 지치고 야윈 듯 합니다. 측은하기도 하고 새끼의 안부도 궁금해서 허겁지겁 사료를 먹고 쌔엥 사라지는 이쁜이의 뒤를 밟아보았습니다.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더니 오지 말라는 듯 이쁜이는 망설입니다.
그리고 한 두 달 정도 지나자 새끼들을 데리고 이쁜이가 나타났습니다. 갈색 얼룩이 두 마리랑 노란색 한 마리였습니다. 이번에도 이쁜이는 새끼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오랫동안 밥을 줘온 나도 새끼 근처에는 못 오게 막아섰죠. 새끼들이 클수록 이쁜이는 말라갔고 육아에 지친 이쁜이를 위해 닭가슴살을 던져주었지요. 그러면 이쁜이는 자신도 먹고 싶은 욕구를 꾸욱 참고 새끼에게 전부 가져다줍니다. 철없는 새끼들은 어미 먼저 먹으라고 하지도 않고 어미가 물어다 준 고기를 사정없이 뺏어서 먹어 치웁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째까지 닭가슴살을 줘도 모두 다 새끼에게 주는 이쁜이. 모성애가 뭐라고 자기 몸은 비실비실 해져 가는데도 오로지 새끼 먼저 먹이는 저 고양이는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는 뜨거운 감동을 줍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성애는 본능이고 희생이고 숭고함이네요.
어미의 지극한 사랑과 돌봄으로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모두 건강하게 자라길 바랐지요. 이번에도 이쁜이는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모질게 떼어내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다행히 멀리는 가지 않고 근처에서 자기 자신을 챙기려는 듯 혼자 지내려고 했습니다. 처음 새끼들은 무척 슬픈 표정이었지만 이내 곳 야생에서의 생활을 받아들인 듯 형제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함께 자고 장난도 치네요. 다행이다 싶었는데 이듬해 추운 겨울 범백이라는 병균이 유행하던 그때 노랑이랑 갈색 얼룩이 한 마리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며칠 후 갈색 얼룩이는 주검으로 발견되어 꽁꽁 언 땅에 묻어 주었습니다. 노랑이도 어느 간부님이 죽어 있어서 땅에 묻어 주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지극정성으로 키워낸 이쁜이 새끼들이 죽는 것이 마치 내가 제대로 이 아이들을 못 돌봐줘서 죽은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괴로웠습니다. 이쁜이 새끼뿐만 아니라 그해 겨울에 범백으로 많은 새끼들이 죽었고 성묘들도 죽어서 더욱 괴로웠습니다. 더는 길냥이들을 돌볼 수 없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안타깝게 죽어가고 병들어 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안타깝고 무기력한 현실이 더 괴로웠습니다. 그해 겨울은 슬픔으로 새해를 맞이 했였죠. 고양이들이 번식력이 좋은 이유는 태어나는 대부분의 새끼들이 겨울을 못 넘기고 죽기 때문이라는 슬픈 사실을 사람들은 알까요?
이쁜이는 다음 해에는 더 많은 새끼를 낳았습니다. 검정 줄무늬가 있는 회색이 한 마리, 노란색에 노랑 줄무늬 한 마리, 검정과 갈색 회색이 뒤범벅인 카오스 한 마리, 턱시도 한 마리, 연한 갈색 얼룩이 총 다섯 마리였습니다. 연한 갈색 얼룩이는 색깔만 조금 흐릴 뿐 이쁜이 얼굴과 눈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욘 석을 보고 있으면 이쁜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다섯 마리 모두는 다행히 잘 자라주었고 어미를 닮아 모두 소심하고 예민했다. 어쩜 그리 어미를 닮았는지 행동도 똑같아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어 집니다.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새끼들을 많이 낳아서 인지 이쁜이는 살이 무척 많이 빠져갔습니다. 얼굴은 볼살까지 쏘옥 들어갔고 등뼈가 모조리 드러날 정도로 마르고 허리도 뱃살도 가늘었습니다. 비틀거리듯 힘이 없어 보여서 고양이 보양식인 닭죽을 사서 사료에 섞여 이쁜이만 따로 주었죠. 이쁜이는 맛있게 잘 먹어 주었지만 좀처럼 살이 붙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넘게 보양식을 챙겨주며 돌봐주던 어느 날 월요일이 휴일이라 출근을 안 해서 금요일에 더 많이 사료를 주고 퇴근을 했습니다. 이쁜이는 상담실 근 처 길가에 길게 늘어져서 퇴근하는 나를 지켜봅니다. 나는 "이쁜아 화요일에 보자" 하고 갔습니다. 오래도록 이렇게 있어줄 것 이라 착각하면서요. 그러나 그날이 이쁜이와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이쁜이는 다섯 마리 새끼와 그전에 태어났던 갈색 얼룩이 이렇게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남겨놓고 마치 자신의 소명을 다했다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어느 구석진 곳에서 홀로 많이 아프지는 않았는지,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무섭지는 않았는지 안타까움이 몰려와 몸도 마음도 힘이 없네요. 차라리 이쁜이의 사체라도 발견되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줄텐데 그마저도 할 수 없는 현실. 이쁜이는 꼭꼭 숨어서 먼 곳으로의 여행을 혼자 감당했습니다.
요즘도 사료를 줄 때마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쁜이 새끼들과 연한 갈색 이를 보면 이쁜이를 보는 것 같아 깜짝 놀랍니다. 특히 이 아이의 눈을 보면 아직도 이쁜이가 살아 있는 것 같아 그리워집니다.
고양이들은 대략 15년에서 20년 정도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길에서 사는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평균 2년 정도 산다고 하네요.... 이쁜이도 대략 3~4년의 생을 살다 간 것 같습니다. 이쁜이 새끼들 중 몇 마리는 일 년을 채 살아보지도 못했고 그 다섯마리중 두마리는 이듬해에 질병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쁜이가 낳은 새끼들의 절반은 죽고 없습니다. 주어진 생을 반의 반도 못 사는 길고양이들의 운명.... 짧아도 너무 짧은 인생사라는 생각에 가슴 가득히 먹먹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