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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희 Jul 19. 2023

상담실을 찾아온 길고양이

다양한 길고양이들의 삶과 죽음을 보며 나를 치유하고 함께 성장한다.

 내가 이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20년 9월, 햇살 좋은 어느 날이었다. 군부대라는 낯설고 생소한 이곳에 상담관으로 근무하면서부터다. 강남에서 가족상담사로 근무하던 중 어찌어찌해서 남자들로 득실득실한 이곳이 나의 사명 지라 여기며 왔지만 생소한 군 문화와 군인들을 보고 있으면 혼자서 웃음이 피식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들도 전 해에 현역으로 전역했기에 군대에 있는 병사들이 모두 내 아들같이 안쓰러우면서도 든든했었다. 아들이 입대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군대에 이번에는 엄마인 내가 들어오게 될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었을까... 참으로 오묘한 섭리인지 운명인지 한동안은 어설프게 지냈다. 


  그렇게 썰렁한 상담실을 꾸미고 가꾸며 상담을 시작했고 군부대 안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잔반 버리는 쪽에 착한 병사들이 던져주는 생선 조각이나 고깃덩어리, 고구마 샐러드 등을 받아서 신나게 먹는 생후 4~5개월 정도의 어린 길고양이들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3~4마리 정도였고 그 아이들의 어미는 아주 가끔 나타나서 나중에야 비로소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어미는 조용하고 겁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잘 나타나지 않았고 새끼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많았다. 새끼들이 배를 채우고서야 그제야 혹시 남은 음식을 찾아 먹는다. 

 녀석들은 야생성이 많아서 그런지 먹이를 줘도 1m 이내로 가까이 오지 않았고 먹이를 줘도 심지어 도망가서 가깝게 지낼 수 없었다. 그저 2m 거리 내에서 바라보고 이 아이들이 장난치고 노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메뉴에서 매운 돼지고기 고추장 불고기가 나왔다. 나한테는 너무 매워서 먹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잔반을 정리하는 곳에서 병사들이 던져준 그 매운 고추장 돼지불고기를 어린 고양이들이 받아먹지 않는가. 두 눈을 의심하며 자세히 봤는데 역시 어린 고양이들이 먹고 있었다. 사람인 나도 매워서 잘 못 먹는 음식을 더군다나 맵고 짠 음식은 고양이 신장에 안 좋아서 먹으면 안 되는데 이 아이들은 배가 고프니까 고기라서 먹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고양이들의 몸은 작고 말랐으며 다리는 길고 가늘었다. 집에 생후 이 개월 된 고양이를 분양받아 키워봐서 그 성장 속도를 아는데 이 아이들은 월령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병사들은 맵고 짠 음식이 동물들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남긴 음식을 고양이에게 던져 주었을 것이다. 또한 튀김 음식이나 양파가 들어간 음식도 고양이들에게는 해로운 음식이지만 야외에서 먹을 것이 변변치 않으니 그거라도 먹고 배를 채우려는 어린 고양이들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다음 날로 우리 집 냥이들의 캔사료와 츄르를 가져와서 주기 시작했고 착한 병사들에게는 간이 된 음식은 주지 말라고 막아서기 시작했다. 줄 거면 물에 씻어서 주고 참치캔도 물에 씻어서 기름이랑 짠맛을 제거해서 주라고 했다. 이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픈지 뭐를 줘도 허겁지겁 잘 먹었다. 


 점심때마다 보게 되면서 길냥이들이 10여 마리가 있음을 부임한 지 2주 정도 지나자 알게 되었다. 모두가 비쩍 마르고 작았다. 늘어진 뱃살도 없었고 녀석들의 등뼈 구조가 다 보일 정도로 작고 말랐다. 심지어 한 마리는 걷는데 힘이 하나도 없고 간신히 네 다리를 지탱하듯 걸었다. 그 녀석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코 주변에는 농이 가득 차서 흐르고 있었고 한쪽 눈은 염증으로 뜨지를 못했다. 어미 한 마리와 새끼 세 마리가 한 가족인 듯 보였고 코에 농이 가득한 녀석도 가족으로 보였다. 등에 푸른색과 짙은 푸른색 줄무늬가 있는 일명 고등어라는 품종의 고양이와 가끔 한 번씩 나타나는 한쪽 눈이 다쳐서 아예 없는 뱅갈 고양이처럼 크고 회색 바탕에  검정줄무늬가 있는 고양이도 있었다. 유독 소심하고 여린 아이같이 생겼으나 모성애가 무척 강한 이쁜이와 그 새끼들도 있었다. 이들은 마음씨 고운 병사들이 던져주는 먹을 것들을 얻어먹기 위해 점심때마다 배식구 근처에서 자신에게 던져주기를 기대하며 서성였다. 아픈 녀석은 자신 앞에 던져진 고깃 조각이 있어도 꾸러기 녀석들이 채가기 일쑤였다. 츄르와 캔 몇 개 가지고는 한창 먹을 시기인 어린 녀석들에겐 턱없이 부족한 식량이었고 사람 음식을 못 먹게 할 수도 없어서 15kg의 대형 건사료를 처음으로 샀다. 어린 고양이들이라 영양이 더 필요할 것 같아 통조림도 한 상자 24개 들어 있는 것을 샀다. 갑자기 몇 만 원이 훅 나갔지만 내 월급에 십 분의 일은 나를 위해서가 아닌 생명을 살리는데 쓰기로 다짐했기에 기꺼이 투자했다. 비록 이곳에서의 첫 월급을 받기도 전에 카드로 지불했지만 사료를 주면서 마음에 따뜻한 무언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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